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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결혼식 사흘 전. 송수아가 결혼식을 치르기 때문에 고택은 다시 떠들썩해졌다. 가정부들은 여느 때보다 바삐 보내다 보니 드레스룸에 한 사람이 몰래 들어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허민준이 오자 박시원은 손에 쥐고 있던 태블릿을 건네주었다. “우리는 몸매가 비슷해. 내 사이즈로 턱시도를 맞추었으니 당신이 입어보고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태블릿에 표기해둬. 이따가 디자이너더러 수선하게 할게.” 허민준이 의아해서 물었다. “너의 결혼식인데 왜 나에게 입어보라는 거야?” 박시원이 조용히 말했다. “송수아가 결혼식을 치르자던 날이 마침 구청에 이혼 신고서를 제출할 수 있는 날이어서 난 절차를 마치고 홀가분하게 갈 수 있어.” 이 말을 할 때 박시원의 두 눈에는 서운해하거나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제야 허민준은 박시원이 이젠 송시아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식 이틀 전. 박시원은 욕실에서 샤워하고 있었고 송시아는 소파에서 문서를 처리하고 있었다.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문자 알림 소리가 정적을 깼다. 얼핏 보았을 뿐인데 문자가 송시아의 눈에 띄었다. [10월 1일 09:00, 해성 국제공항 출발 UA1082편 항공권을 구매 완료했습니다. 고객님 이름은 박시원...] 송시아가 휴대전화를 들고 볼 때 마침 박시원이 머리를 닦으며 욕실에서 나오자 대뜸 물었다. “곧 결혼하는데 왜 항공권을 샀어?” 그는 손을 멈칫하더니 곧 안색이 평온해졌다. “항공권이라니? 잘못 본 거 아니야? 스팸 문자겠지.” 송수아는 개의치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이 꺼진 후 두 사람은 등을 돌리고 침대에 누웠다. 한 사람은 곧 깊은 잠에 빠졌지만 다른 한 사람은 밤새 뜬눈으로 보냈다. 결혼식 전날. 박시원은 결혼한 그 날부터 쓰던 일기장을 꺼내 한 폐지씩 넘기며 봤다. [2019년 10월 1일. 난 결혼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나의 신부는 첫사랑이 턱시도를 입은 모습을 보기 위해 그날 밤 해외로 떠났다.] 일기장 옆에는 눈물이 말라붙어 쭈글쭈글해진 흔적도 있었다. 박시원은 그곳을 만지며 다음 폐지로 넘겼다. [2020년 12월 30일. 나와 함께 설을 보내는 사람이 처음 생겼지만 난 전혀 행복하지 않다. 송시아는 나를 첫사랑이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데려왔다. 나와 함께 설을 쇠고 싶었을까? 아니면 단지 첫사랑이 그리웠을까? 아마 첫사랑 때문이겠지.] [2022년 10월 1일. 결혼기념일이지만 난 여전히 행복감이 없다. 송시아가 선택한 레스토랑은 첫사랑이 고백하던 곳이다.] ... [2024년 8월 29일. 송시아의 첫사랑이 귀국했다. 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안다...] 두꺼운 일기장에는 지난 5년 동안 그의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고 또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결혼을 남김없이 기록했다. ‘하지만 괜찮아. 오늘 끝날 거야.’ 박시원은 펜을 들어 이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었다. [2024년 9월 31일, 난 떠나기로 했다. 송수아, 당신이 싫어졌어.] 그는 이 일기장과 이혼 합의서를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그는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예쁘게 꾸며진 방을 둘러보며 피식 웃었는데 눈빛에는 자유에 대해 동경이 가득했다. 종소리가 울리자 그는 아득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결혼식 날. 웨딩홀은 꽃과 흰 베일로 아늑하게 장식되었고 채색 유리창 너머로 햇빛이 알록달록한 그림자를 드리워 이 신성한 공간에 따스함과 낭만을 더해주었다. 송수아는 장미길의 끝에 서 있었다. 나중에 진행하는 결혼식이지만 막상 무대에 오르니 송수아는 마음속에 기대가 가득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박시원이 턱시도를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잠시 후 웨딩드레스를 입고 빨개진 얼굴로 천천히 박시원에게 다가갈 것을 생각하자 송수아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음악이 울리자 송수아는 베일을 쓰고 치맛자락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박시원 군은 송수아 양을 아내로 맞이하여 언제나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아내의 편에 서고 아내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하고 성실한 남편이 될 것을 맹세합니까?” 신랑은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합니다.” “송수아 양은 박시원 군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언제나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남편의 편에 서고 남편을 품어줄 수 있는 자상하고 따뜻한 아내가 될 것을 굳게 맹세합니까?” 송수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합니다.” 박수 속에 주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졌다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송수아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남자가 베일을 들고 입 맞추려 할 때 그녀는 베일을 꽉 잡고 손을 놓지 않았다. 허민준은 그녀가 수줍어하는 줄 알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에 키스했다. “수아야, 두려워하지 마.”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송수아의 동공이 흔들렸다. ‘허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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