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트로피를 손에 든 서지아는 전혀 그녀를 위해 기뻐하는 내색이 없었고 또한 트로피를 건넬 기미도 안 보였다. 오히려 입술을 꼭 깨문 채 가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언니, 상무님께서 이 트로피를 전해드리래. 이거 엄청 권위 있는 상장 같은데, 언니 너무 대단하다.”
“그래서 말인데 염치없는 제안이긴 하지만 뭐 하나 상의해도 될까? 내가 이런 상장을 받아본 적이 없잖아. 이 트로피 나 며칠만 빌려주라.”
‘며칠만 빌려줘?!’
송서윤은 이토록 황당하고 무례한 요구를 난생처음 들어보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가식적인 미소를 날렸다.
“염치없는 거 알면 이런 제안을 하지 말았어야지. 그렇게 욕심난다면 네가 직접 대회에 나가서 따오든가.”
말을 마친 송서윤은 서지아의 품에서 트로피를 뺏어갔다.
한편 서지아는 그녀가 이토록 매정하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지 갖은 괴롭힘이라도 당한 듯 속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언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갖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며칠 놔두면서 스스로 격려하겠다는 것도 안 돼?”
송서윤이 곧장 트로피를 뺏어가려 하자 서지아는 더더욱 놓아주질 않았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다가 크리스털 트로피가 끝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이때 마침 이리로 오던 육지완과 김인우가 이 광경을 보더니 황급히 달려가서 서지아를 품에 안았다.
“지아야!”
둘은 서지아를 둘러싸고 그녀가 행여나 다쳤을까 봐 꼼꼼히 살펴보았다.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종아리가 유리 파편에 찔려 피가 흘러나왔다. 두 남자는 가슴이 움찔거리고 안쓰러워서 어쩔 바를 몰랐다.
“얼른 병원 가자!”
서지아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도 육지완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를 번쩍 업고 자리를 떠났다.
한편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조각을 본 김인우도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서윤이 넌 뭐든 다 가졌잖아. 왜 기어코 지아랑 뺏으려고 하는 건데?”
‘뺏는다고? 내가?!’
송서윤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렸다.
“이거 내가 받은 트로피야. 석 달 동안 고생한 성과라고. 걔가 내 트로피를 안고 놓아주질 않는데 대체 뭘 뺏었다는 거야?”
그녀는 너무 화난 나머지 몸이 파르르 떨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조각들을 보고 있자니 목소리까지 싸늘하게 식어갔다.
“지아가 내 트로피를 깨트렸어. 마땅히 나한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까지 말하면 김인우가 사리 분별을 할 줄 알았는데 되레 더 발끈했다.
“난 또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고. 고작 트로피 때문에 이러는 거야? 넌 작정하면 트로피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데 뭣 하러 지아랑 비교해? 그러다 결국 지아만 다쳤잖아. 사과는 네가 해야지!”
말을 마친 김인우는 송서윤의 반응도 살펴볼 겨를 없이 부랴부랴 서지아에게 쫓아갔다.
송서윤은 산산조각이 난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며 방금 김인우가 한 말이 계속 뇌리를 스쳤다.
‘지금 나보고 지아한테 사과하라는 거야? 피해자는 나인데 가해자에게 사과하라고?! 인우야, 너 진짜 최고다!’
가슴이 미어질 듯 아프고 뒤늦게 다리에서도 은은한 통증이 전해졌다.
송서윤은 그제야 발견했다. 다리에 기다란 흉터 자국이 나버렸고 살이 째져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건 서지아의 부상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면서 바닥의 유리 조각들을 다 주운 뒤에야 본인 상처를 수습했다.
저녁에 엄마 김화영한테서 메시지가 한가득 왔는데 전부 웨딩드레스 사진이었다. 열몇 가지 스타일에서 마음에 드는 거로 한 벌 고르라고 하는데 쭉 둘러보다가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마디 얘기를 나눈 후 김화영은 딸아이가 매우 피곤하다는 걸 바로 눈치채고는 무슨 일 있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송서윤은 오늘 겪은 일을 다시 되새기자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을 글썽거렸다. 다만 끝까지 아무 일 없다면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엄마, 나 여기 일 다 마무리하고 다음 주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결혼식 준비는 잘 돼가요?”
이때 마침 집에 돌아온 육지완과 김인우가 ‘결혼’이라는 두 글자를 듣더니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결혼이라니? 무슨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