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바짝 긴장한 두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송서윤이 차분하게 말했다.
“사진일 뿐이야. 나중에 더 찍으면 되지.”
“이렇게 모조리 태워버렸으니 나중에 찍는 수밖에 없겠다. 우리 마침 여행 다녀온 지도 한참 됐잖아?”
육지완이 한 걸음 물러서자 김인우도 얼른 한 마디 덧붙였다.
“이번엔 지아도 함께 가면 되겠네. 걔 살면서 여행 간 적 단 한 번도 없대.”
그의 말을 들은 송서윤은 다시 한번 저 자신이 우스워서 피식 웃었다.
이를 오케이 사인으로 받아들인 두 남자는 금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막 집 밖을 나서려고 하는데 거실에 문득 상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아침에 외출할 때도 없었던 상자들이 왜 갑자기 나타난 걸까?
“이건 또 뭐야?”
두 남자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송서윤은 상자를 힐긋 바라보며 답했다.
“아, 나 사직했어. 직장 바꾸려고.”
‘이전에 분명 그 직장을 엄청 좋아했던 거 아니었어? 왜 갑자기 사직한 거지?’
두 남자의 머릿속에 똑같은 의문이 들었다.
오늘 송서윤은 유독 이상한 모습만 보인다. 육지완과 김인우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김인우가 먼저 질문을 꺼내려 했는데 휴대폰 벨 소리가 뜬금없이 울렸다.
육지완이 전화를 받자 서지아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완 씨, 우리 집에 갑자기 정전됐어. 나 너무 무서워... 어떡해 이제?”
옆에 있던 김인우가 이 말을 듣더니 선뜻 말을 가로챘다.
“괜찮아, 지아야. 지금 바로 갈게.”
늘 차분했던 육지완도 순간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드러났다.
서지아가 너무 걱정된 나머지 두 남자는 나란히 차 키를 챙겨서 집 밖을 나섰다.
한편 송서윤은 줄곧 침착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두 사람이 집을 나간 후에야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릴 때 그녀는 줄곧 고모 집에서 지냈던지라 고모도 진작 그녀를 친딸처럼 이뻐하고 보살펴주었다.
어느덧 이곳을 떠나야 하니 고모와 제대로 작별인사를 나눠야 할 듯싶었다.
송서윤이 돌아가서 결혼한다는 소식에 그녀의 고모 송진경은 매우 아쉬우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윤아, 너 경주 가서 결혼하는 거 지완이랑 인우는 알고 있어?”
송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아니요, 아직 몰라요. 고모도 저 대신 비밀 지켜줘요. 더는 우여곡절을 겪고 싶지 않거든요.”
말이 떨어진 순간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송진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하긴, 걔네들 어려서부터 너만 감싸고 돌았잖아. 누가 봐도 널 좋아하는 게 뻔히 알렸어. 너희들 종일 붙어 다녀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네가 둘 중 한 명이랑 결혼할 줄 알았는데 아쉽네...”
이에 송서윤이 미소를 짓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쉬울 거 없어요. 서로가 안 어울릴 뿐이에요.”
송진경도 더는 그녀를 권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서윤아. 네가 조만간 집에 돌아갈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어. 우리 서윤이 어릴 때부터 커오는 걸 쭉 지켜봤는데 이젠 경주에 돌아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겠네? 가기 전에 고모 집에 한 번 와. 얼굴은 보고 가야지.”
송서윤은 웃으면서 애교 조로 고모에게 속삭였다.
“그럼요. 고모한테 드릴 선물도 있어요. 저도 고모랑 떨어지려 하니까 너무 아쉬워요.”
송진경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에야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끊자마자 곧장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는데 송서윤의 회사 상무였다.
“서윤 씨, 다름이 아니라 전에 서윤 씨가 회사를 대표해서 디자인한 작품이 상을 받았어요. 트로피를 금방 전달받았는데 서윤 씨가 사임해서 어떻게 드릴 수가 없네요. 서지아 인턴에게 대신 전했으니 집까지 보내드릴 거예요.”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초인종이 울렸다.
송서윤이 전화를 끊고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자 서지아가 트로피를 들고 문밖에 떡하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