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집에서 쫓겨나다
서울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기 때문에 길바닥이 축축했다.
집사는 아무렇지 않게 진희원의 가방을 대문 밖으로 던지며 말했다.
“진희원 씨, 대표님이 직접 나서시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제가 대신 말할게요. 진희원 씨의 친부모님은 지금 시골에 계시고 성은 진 씨입니다. 김씨 가문에서 전에 친딸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혜주 아가씨를 찾았으니 이제 진희원 씨도 눈치껏 김씨 가문과의 관계를 끊었으면 합니다.”
집사는 말을 하며 카드 한 장을 꺼냈다.
“200만 원이에요. 대표님이 주시는 보상금 같은 겁니다.”
“필요 없어요.”
진희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신의 검은 가방을 들어 올렸다.
집사는 그런 눈앞의 소녀가 귀찮은 듯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돈을 거부하다니, 아무것도 없으면서 억지로 체면을 내세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김씨 가문에는 이제 자기 친딸이 생겼는데 이런 체면이 서지 않는 가난한 시골 촌뜨기를 그냥 둘리가 없었다.
집사는 자기 주제도 모르는 그런 그녀가 너무 우스웠다.
“진희원 씨 마음대로 하세요!”
말을 마친 집사는 대문을 쾅 닫아 버렸고 진희원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김씨 가문에서 검은 가방 하나만 들고 나왔고 뒷모습은 더없이 꼿꼿했다.
머리 위로 내리는 비가 좀 엉망인 것 말고는 지금 그녀의 모습은 올 때와 똑같았다.
그녀를 본 위층 사람들은 그녀가 듣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이따금 비웃어댔다.
“드디어 가는구나.”
“그러니까, 시골에 내려가지 않고 우리 집에 붙어있을까 봐 무서웠다니까.”
그런 소리를 듣고도 진희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입꼬리만 은은하게 올라갔다.
김씨 가문이 사람을 볼 줄 모른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희원은 무심하게 사탕을 깨물었다. 그녀는 길고 까만 머리에 눈매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얼굴에 어려있는 병든 기색은 퇴폐적이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
같은 시각, 경주의 어느 정원.
진씨 가문은 국제회의가 한창이었다. 진상철은 맨 위에 앉아 대지팡이를 짚고 위엄있는 분위기를 풍겼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너희 동생과 관련된 소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이냐?”
그의 여섯 손자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경주의 갑부이자 진씨 가문의 여섯 아들은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하나하나가 그들 업계를 뒤흔들 수 있는 존재였지만 오늘은 전부 다 고개를 떨군 채 눈 밑에는 그리움과 슬픔이 가득했다.
그 당시 그들이 잃어버린 건 일곱째 여동생이었다. 그때 여동생은 울거나 보채지 않는 귀여운 갓난아기였다.
18년 동안 그들은 끊임없이 조사했고 마지막으로 알아낸 것이 산동네였다.
유괴범이 얼마나 손을 썼는지 더 이상의 정보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저희가 계속 조사할게요. 반드시 동생을 찾아낼게요!”
그때 통통한 남자 하나가 손에 자료를 들고 달려 오더니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회장님! 아가씨! 찾았습니다!”
그의 말에 늘 침착하던 진상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놀라서 손을 벌벌 떨었다!
“어디야? 지금 당장 사람 보내!”
그러자 남자는 자료를 건네며 말했다.
“서울에 계십니다. 자세한 건 조금 더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서울로 출발해!”
진상철은 흥분한 어투로 말했다.
“차 대기시켜!”
……
해질 무렵, 서울.
쫓겨난 진희원은 시골로 내려 가지 않고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볼품 없는 동네였는데 그녀가 차를 세우자 누군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희원이 왔구나.”
“네, 저 왔어요.”
진희원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과일 가게 아주머니가 그녀에게 사과 한 알을 건네며 말했다.
“보름 동안 못 본 것 같은데. 네가 없으니 내 다리를 봐줄 사람이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희원아, 바둑 둘 때 이 손이 자꾸 떨려.”
자이 아파트에서 진희원이 유명 인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은퇴한 공무원들은 그녀에게 진찰받으며 수다를 떠드는 것을 좋아했다.
이곳이 상가처럼 보이지만 실은 신비로운 곳이었다. 바둑을 둔 그 사람은 한때 프로 바둑기사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신분에 대해서는 연구해 본 적이 없었다. 진희원이 여기에 살고 있는 이유는 그냥 편안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