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전도현은 강서윤에게 다가가 다시 반지를 내밀었다.
“강서윤 씨, 남은 인생 잘 부탁해.”
묵직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에 고귀한 자신감이 가득했다.
강서윤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 사람 말은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는 거야? 누구 마음대로?’
그녀는 비단 케이스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냈다.
하트 모양의 다이아몬드 반지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3EX 컷으로 세공되어 있었고 정교한 세공 기술 덕분에 모든 각도에서 눈부신 광채를 뿜어냈다. 그리고 투명도가 LC 등급인 최고급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그런데...
강서윤의 입가에 아름다운 미소가 새어 나오더니 갑자기 반지를 던져버렸다.
완벽한 백금 다이아몬드 반지가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그 모습에 전도현은 말을 잇지 못했고 문밖에 서 있던 비서실장 진기범도 충격에 휩싸였다.
‘내... 내가 잘못 봤나? 방금 대표님이 준 반지를 던져버렸어?’
강서윤이 싸늘하게 말했다.
“대표님이 절 구했더라도 전 대표님과 결혼하지 않아요. 결혼은 애들 장난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런 유치하고 가벼운 생각은 빨리 버리세요.”
그러고는 반지를 내팽개친 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귀하디귀한 다이아몬드 반지는 고철 덩어리처럼 바닥에 굴러다녔다.
전도현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 여자... 성깔 있네. 꽤 거칠어.’
문득 그녀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전제는 그녀가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범아, 전에 조사했던 자료를 전부 저 여자한테 보내줘.”
“네?”
진기범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어떻게 된 거지? 강서윤 씨가 저렇게 함부로 대했는데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자료를 보내라고? 내가 알던 냉정하고 잔인한 대표님 맞아? 귀신이라도 씌었나?’
“아니야, 됐어. 내가 직접 보낼게.”
진기범이 꿈쩍도 하지 않자 전도현은 서재로 가서 컴퓨터를 켰다.
한편 강서윤은 택시를 타고 그녀가 산 별장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은 다음 흰 셔츠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회장님. 괜찮으세요? 여기서 멀쩡히 잘 지내시다가 왜 갑자기 귀국한 거예요? 그냥 여기서 편하게 사시지. 그리고 왜 두식이를 데리고 다니지 않은 건데요? 회장님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요. 그 나쁜 년이 감히 사람을 사서 회장님을 죽이려 하다니. 제가 당장 가서 죽여버리겠습니다.”
5년 사이 강서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굽신거렸고 일거수일투족 모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녀가 뭐라 하지 않아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위해 일을 하고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었다.
강서윤은 휴대폰을 무심하게 귓가에 대고 어깨로 받쳤다.
“됐어요. 국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무도 신경 쓰지 말라고 전해요.”
“네? 정말 도와드리지 않아도 되나요?”
상대가 걱정스럽게 묻자 강서윤이 웃으며 답했다.
“이 정도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돌아오지도 않았어요.”
그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 건너편의 힐러리는 한숨을 쉰 다음 그녀의 뜻대로 지시를 내렸다.
강서윤이 계정에 로그인하자마자 읽지 않은 메일 한 통이 떴다.
클릭해보니 강서진과 운전자의 대화 내용 캡처였다. 강서진이 운전자에게 돈을 주고 그녀를 차로 치어 죽이라고 시킨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운전자의 해외 계좌로 송금한 기록과 운전자가 그녀를 차로 들이받아 낭떠러지로 떨어뜨리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도 첨부되어 있었다.
강서진의 죄를 입증하기엔 충분한 증거들이었다.
‘그나저나 대체 누가 이 짧은 시간에 증거를 확보하고 나한테 친절하게 보내주기까지 한 거지? 엄청 대단한 사람인데?’
강서윤은 협력을 구하는 어느 회사의 대표인 줄 알았는데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놀랍게도 전도현이었다.
‘전도현? 내가 프러포즈를 거절했는데도 나를 도와줬다고? 역시 제국 그룹 대표답게 능력이 대단하네.’
증거가 손에 들어온 이상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강서윤은 사진을 하나하나 저장했다. 두 눈에 교활한 빛이 번뜩였다.
그 시각 강씨 저택의 화려한 유럽풍 침실.
강서진이 피아노 앞에 앉아 여자아이 인형을 손에 쥔 채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강서윤이 산 아래로 떨어졌으니까 죽지 않더라도 장애인이 되거나 얼굴이 싹 다 망가졌을 거야. 병원에 입원하기만 하면 걔를 죽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그럼 주식 15%는 내 것이 될 거야.’
하얀 손으로 힘껏 비틀자 인형의 머리가 그대로 뽑히고 말았다.
삐, 삐, 삐, 삐...
그때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개인 계정인데 이 늦은 시간에 누구지?’
확인해 보니 익명의 메일이었다. 그런데 확인한 순간 강서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메일 안에 그녀와 운전자가 나눈 대화 내용이 모두 담겨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대포폰으로 그 사람이랑 연락했고 또 돈도 해외 계좌를 통해 보냈는데.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야?’
표정이 말이 아니게 어두웠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하며 메일에 답장했다.
[너 대체 누구야? 원하는 게 뭐야? 돈이라면 얼마든지 말해.]
[돈은 필요 없고 두 가지 선택을 줄게. 하나는 기자회견을 열어 네 동생한테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네 은밀한 사진을 나한테 보내는 것이야. 10분 안에 선택하지 않으면 사진들을 전부 SNS에 올릴 거야.]
‘은밀한 사진이라니! 안 돼. 절대 안 돼.’
강서진은 상상만 해도 화가 나서 얼굴을 찌푸렸다.
‘대체 누구야? 누가 감히 날 이렇게 협박해?’
그녀는 재빨리 답장했다.
[그건 안 돼. 돈은 얼마든지 줄게. 내가 강씨 가문의 딸이라는 걸 잊지 마. 날 건드렸다간 결과를 감당할 수 있겠어? 대신 나랑 손을 잡으면 엄청난 보수를 줄게.]
상대의 답장이 바로 도착했다.
[9분 남았어.]
강서진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