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산월 별장.
강서윤은 남성용 셔츠를 걸친 채 별장의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차 안에서 벌어진 일들이 자꾸만 떠올라 두 볼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도현은 책임감도 없고 뭐든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지만 몸 하나만큼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특히 단단하게 조여진 복근.
힘 있고 매끈하면서도... 뭐랄까,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그때였다.
“짝!”
눈앞을 스치는 그림자와 함께 묵직한 따귀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강서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숨이 턱 막혔다.
그때 어둠 속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기다려.”
가장 앞에 있던 남두식이 손을 내저어 그들을 막아섰다.
“대표님이 뭐라 하셨는지 벌써 잊었어? 아무도 개입하지 말라고 했잖아. 괜히 나서다가 혀 잘리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
“하지만 저 자식이 대표님을 때리는 걸 그냥 두고 보라고요? 대표님 같은 분이 조직 안에서 어떤 존재인데... 무슨 자격으로 손을 대는 겁니까!”
경호원 중 한 명이 참지 못한 듯 분노 섞인 목소리로 어둠을 가르며 외쳤다.
“괜찮아. 대표님이 그렇게 만만한 분 아니야. 곧 어떻게 되는지 보게 될 거야. 지켜보자고.”
남두식은 눈빛 하나 흐트러짐 없이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강서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엔 은빛 머리를 찰랑이며 당당하게 서 있는 열여덟 살 소년이 있었다.
찢어진 청바지에 낙서처럼 그려진 티셔츠.
멋을 낸 듯했지만 어디서 봐도 철없고 허세 가득한 티가 났다.
그는 다름 아닌 강서윤의 친동생, 강연수였다.
하지만 그는 늘 강서진에게 세뇌된 채 살아왔다.
제대로 된 공부는커녕 문제아로 자랐고 강서윤을 ‘강씨 가문에서 주워온 가짜 딸’이라 여기며 노골적으로 경계하고 미워했다.
그는 재산을 나눈다는 것조차 용납 못 해하며 적대감을 드러내곤 했다.
지금 이 순간, 강연수는 두 눈에 불을 켜고 강서윤을 노려보고 있었다.
“감히 누나한테 그런 짓을 해?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 너 정말 몰라서 그래? 그 사진 퍼뜨려서 상처 준 건 너잖아. 근데 누나는 나한테 너 찾아가지 말라고 부탁까지 했어. 집에 와선 우느라 눈이 퉁퉁 부었는데도 그 와중에 네 걱정부터 하더라. 그런데도 그딴 짓을 했다고? 넌 진짜 사람도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분노와 배신감이 뒤섞여 있었다.
“우리 강씨 가문에서 널 주워서 키워줬더니, 배은망덕도 모자라서 이젠 물어뜯겠다고? 늑대새끼 하나 참 잘 키웠다, 진짜.”
강서윤은 입꼬리를 닦고 손끝에 묻은 피를 천천히 바라봤다.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았고 그 안에서 서서히 살기가 피어올랐다.
강연수는 나름 깡패질 좀 했다고는 해도 이런 위압감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이내 어깨를 펴더니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네가 뭔데 날 그렇게 노려봐? 분명히 말해두는데 여긴 CCTV 다 고장났어. 오늘 여기서 내가 너 죽여도... 아무도 몰라. 네가 죽어도 불쌍해할 사람? 한 명도 없을걸. 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
“CCTV가 고장났다고?”
강서윤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묘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당연하지. 내가 그딴 것도 모르고 너랑 여기서 붙자고 했겠냐?”
강연수가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
“쫄았으면 지금이라도 말해. 그리고 샹네르 광고고 메인 모델이고 다 누나한테 돌려줘. 그게 서로 좋게 끝내는 방법이니까.”
하지만 강서윤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알려줘서 고마워.”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한쪽 다리를 번쩍 들며 차가운 눈빛을 던졌다.
“쾅!”
하이힐을 신은 그녀의 발끝이 강연수의 가슴을 세차게 걷어찼다.
키 170cm의 강연수는 그대로 몇 미터를 날아가 복도 모퉁이에 처박혔다.
“크윽...”
가슴 속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 느껴지는 그 잔혹하고 숨이 막힐 듯한 아픔이 퍼져나갔다.
그 시각,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남두식과 경호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역시... 대표님.’
‘한 발로 사람을 저렇게 날려버리다니...’
강서윤은 다시 우아하게 그에게 다가갔다.
풍성한 치맛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마치 전장을 지배하는 여신처럼 그녀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강연수는 주먹을 꽉 쥔 채 떨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너... 지금 뭐 하려는 거야?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강서윤의 발에 압도당하며 자신이 전혀 상대가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그는 완전히 기가 꺽인 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강서윤은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실리지 않은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CCTV 고장났다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내가 이런 기회를 놓칠 것 같아?”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서윤은 다리를 다시 천천히 들려 올랐다.
날렵한 하이힐 끝이 강연수의 머리 위에 툭 하고 얹혔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 없이 하이힐 끝에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힘을 실었다.
그녀의 다리는 흔들림이 없었고 표정은 오히려 비현실적일 만큼 무표정했다.
잔인하리만치 조용한 공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