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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유지민이 말을 마치자 강인혁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치맛자락을 꽉 쥔 채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집안의 재촉이 싫어서 한 계약 결혼이었잖아요. 이제 곧 3년이 다 되어가기도 하고...” 강인혁은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민아, 이제 내가 질 린 거야?” “뭐라고요?” 유지민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강인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고 그 시선에서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는 듯한 느낌이 들자 유지민은 당황스러워졌다. “난 이혼할 생각 없어. 지민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강인혁은 결국 밖으로 뱉지 못했다. ‘괜히 말해서 지민이가 도망치면 어떡하지?’ 그는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강시현과 나는 그저 조카와 삼촌 사이일 뿐이야. 그 사람이 날 견제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그리고 난 지금도 이 결혼이 필요해.” 유지민은 이상하게 그의 말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결국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문밖에 있던 양민하는 자연스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양민하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눈빛 속에 비치는 서늘한 기색을 감췄다. ‘역시 유지민은 쇼하고 있는 거야. 결국 목적은 강시현을 되찾는 건가? 강시현을 철저히 망가뜨린 후 다시 받아줄 생각인가?’ 양민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녀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유지민, 넌 절대 내 손에서 강시현을 빼앗을 수 없어!’ 연회가 끝난 후, 강시현은 완전히 무기력해진 듯했다. 회사에서도 일에 집중하지 못했지만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책상 위에는 그와 유지민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지난번에 화가 나서 깨뜨렸던 그 사진을 그는 다시 정성스럽게 붙여두었다. 유지민은 결혼까지 했고 돌아온 뒤 강인혁과 더욱 가까이 지내며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 강시현은 깊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맹수 같은 그의 눈동자가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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