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솔직히 말해 봐. 너 외도한 거 숨기고 나랑 이혼하려는 거 아니야?”
진태현은 관광 크루즈 위에서 아내, 아니, 이제 전처가 되어버린 이사라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참, 태현 씨는 마지막까지 낭만이라고는 없는 남자야. 정말 사람을 질리게 해. 이번에 같이 나온 건 이혼 숙려 기간 동안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을 다시 가보려고 한 거야. 잘 마무리하고 깔끔하게 헤어져.”
이사라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커다란 자외선 차단 선캡을 쓴 채,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정말로 여행을 즐기러 온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진태현과의 파탄이 난 결혼 생활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여행을 즐길 기분이 전혀 아니야. 네가 여행을 따라오면 이혼의 진짜 이유를 알려준다고 해서 온 것일 뿐이야. 이사라,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어! 주택담보 대출, 자동차 대출, 네 어머니 병원비로 빌린 1억 2천만 원, 모든 게 다 나에게는 짐이고 나를 숨 막히게 해.”
이사라가 무덤덤하게 듣고만 있자, 진태현은 말을 이었다.
“사실 매니저로 승진할 수도 있었어. 그런데 네가 계속 이혼하자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승진 기회도 놓쳤고, 직장도 잃을 뻔했어. 부모님도 내가 너한테 잘못해서 이혼당하는 줄 알고 크게 실망하셨어. 이런 상황에서 네가 왜 이혼하려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어. 빨리 말해 줘.”
진태현은 냉정한 표정으로 이사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사라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3년 전, 진태현은 출장으로 아스트라에 갔다가 관광지에서 친구들과 여행 중이던 이사라를 만났다. 두 사람은 며칠 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귀국 후에도 진태현은 자주 이사라에게 밥을 사주고, 그녀가 일하는 피트니스 센터에 멤버십을 등록하며 자주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반년 만에 결혼에 골인했지만, 결혼 생활은 그들의 사랑을 심각하게 변질시켰다.
약혼할 때 이사라의 가족은 6천만 원의 예물과 아파트 한 채와 차를 요구했다. 진태현은 이사라를 정말 좋아해서 모든 저축을 털고 가족의 도움을 받아 6천만 원의 예물과 3억 원짜리 집, 3천만 원짜리 차를 마련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은 행복하지 않았다.
이사라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진태현은 매일 요리하고 집안일을 하며 이사라를 ‘모시고’ 살았다. 그리고 직장생활도 열심히 하며 매달 몇백만 원의 대출을 갚아야 했다. 게다가 이사라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리자, 진태현은 1억 2천만 원을 빌려 치료비를 마련해 드렸다.
그런데도, 이사라는 진태현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무능하다며 친구들의 남편과 비교하고 비난했다.
그러다가 한 달 전부터는 계속 이혼을 요구했다.
진태현은 그때부터 이사라가 분명 외도했을 거로 의심했다. 만약 내연남을 숨겨둔 게 아니라면 이혼을 결심할 리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이사라와 그녀의 부모까지 매일 진태현의 심기를 건드리자, 그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고 매니저로 승진할 기회마저 놓쳤다. 그것도 모자라 회사에서는 두 달간 휴직을 권유받았다.
“태현 씨는 항상 남 탓만 하지? 태현 씨가 얼마나 별로인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우리 부모님의 병원비를 마련한 건 태현 씨가 남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니야? 왜 이제 와서 생색내? 집, 차도 태현 씨가 결혼하겠다고 무리해서 산 거 아니야? 이 결혼을 후회해야 할 사람은 나라고! 태현 씨는 무능하고 돈도 못 벌고, 나랑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니 공허함을 채워주지도 못하잖아. 이 결혼 생활은 너무 답답하고, 당신 같은 남자랑은 더 이상 같이 살고싶지 않아.”
한바탕 쏘아내고 나서 이사라가 담담하게 물었다.
“이제 원하는 대답을 얻었으니 만족해?”
이사라는 차갑게 말한 후 바다를 바라보며 더 이상 진태현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큰 폭발음이 울리며 크루즈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갑판 위 모든 사람이 순식간에 바닥에 넘어졌고, 이사라는 순간적으로 몸이 앞으로 쏠리더니 난간 밖으로 떨어졌다.
“아!”
“태현 씨, 살려줘! 빨리 나 좀 구해줘!”
이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난간을 붙잡고 진태현에게 소리쳤다. 진태현도 크게 넘어졌다. 그는 고개를 들어 크루즈가 거대한 암초로 향하는 것을 보고 눈이 커졌다.
진태현은 다친 팔의 통증을 참으며 일어나 이사라의 손을 잡고 위로 끌어올렸다.
“꽉 잡아!”
진태현은 큰 소리로 외치며 다가오는 거대한 암초를 보며 급하게 이사라를 끌어올렸다.
“도망치세요! 앞으로 달려요!”
크루즈 위의 한 선원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진태현은 이사라의 손을 잡고 크루즈 뒤쪽으로 달려갔다.
“쿵!”
크루즈가 암초에 부딪혀 선체가 즉시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남은 사람들은 바닥에 쓰러지고,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크루즈에 큰 구멍이 나서 곧 침몰할 거야!”
누군가의 외침에 상황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진태현은 바닥에 엎드려 크루즈가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남아있던 사람들도 난간으로 달려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태현 씨, 어떡해? 나 여기서 죽기 싫어!”
이사라는 머리를 감싸며 울기 시작했다.
진태현은 침몰하는 크루즈를 보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고 난간으로 가서 바다를 내려다본 후 이사라에게 소리쳤다.
“크루즈가 곧 침몰할 것 같아! 어서 와! 같이 뛰어내리자!”
이사라는 겁에 질려 달려왔지만, 바다를 보고 두려움에 울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 나 못 뛰겠어... 무서워!”
“안 뛰면 죽어! 내 손 잡고 뛰어내려!”
진태현은 이사라에게 소리치며 강제로 그녀의 손을 잡고 난간을 넘어 눈을 감고 뛰어내렸다.
“아!”
이사라는 공포에 질린 채 바다로 떨어졌다. 진태현은 격렬하게 발버둥을 치던 이사라의 손목을 꽉 잡았다.
진태현은 바다에 떠 있는 커다란 철판 위에 앉아 이사라의 손목을 붙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물었다.
“말해봐. 너 나랑 이혼하려는 거 외도 때문이지? 다른 남자가 생긴 거지? 말 안 하면 손 놓을 거야! 내가 손을 놓으면 넌 빠져 죽을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