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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일제히 고개를 돌리자 서진하가 사람들과 함께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세련되고 고귀한 분위기에 잘생긴 외모는 동창들 중에서도 빼어났다. 괜히 학교의 남신으로 불리던 것이 아니었다. “오빠, 정지연이 유설이한테 와인을 뿌렸어요. 정말 너무해요!” 임사아는 곧바로 나서서 고자질을 하며 문유설을 잡아당겼다. 문유설은 입살을 살짝 깨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진하를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바라보며 지금의 서러움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갸날프고 처참한 지금의 몰골은 사람의 동정을 자아내기엔 충분했다. 정지연을 본 서진하는 잠시 멈칫했다. 가라앉은 두 눈에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드러났다. 다음 순간, 자신의 외투를 벗은 그는 문유설에게 걸친 뒤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조용히 위로했다. “괜찮아, 심승주 더러 예비로 드레스 준비하라고 했으니까 일단 가서 갈아입자, 응?” 고개를 들어 그를 보는 문유설의 두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응, 사실 언니 잘못도 아니야, 그냥 내가 실수를 한 거지. 너무 뭐라고 하지 말고 다들 이만 놀러 가.” 정지연은 코웃음을 쳤다. “급 낮은 짓하네. 내 탓 아니라고 하면서 단어 하나하나가 다 날 뭐라고 하고 있잖아. 지는 게 싫으면 내기를 하지 말든가! 문유설 네가 내기를 하자고 한 거잖아. 왜, 남들은 져도 괜찮아? 근데 너는 안 되겠어?” 그 말이 나오자 문유설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조금 무력하게 서진하를 보더니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고개를 푹 숙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되레 옆에 있던 임시아가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얼른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유설이가 돌아와서 네 가짜 신분이 들통난 것에 불만 품고 있었던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외국에 가만히 있더니 왜 또 돌아와서 소란이야?” 임시아의 말은 문유설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문유설은 서운한 눈으로 임시아를 바라봤다.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눈빛을 본 임시아는 자신의 정의 사도라도 된 것 같은 기분에 더욱더 힘을 냈다. “너 아직도 유설이랑 우리 사촌오빠의 결혼에 분노하고 있는 거야? 근데 유설이야 말로 문씨 가문의 친딸이잖아. 남의 딸 자리를 공으로 그렇게 오래 누렸으면서 고마워하기는커녕 되레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정말 양심도 없지!” 그렇게 말하자 서진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정지연을 보는 두 눈에 짜증과 경계가 어리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 “됐어, 불만이 있어도 장소는 가려야지.” 그렇게 말한 그는 정지연은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문유설을 끌고 등을 돌렸다. “서씨 가문과 문씨 가문에서 정한 결혼은 내가 서한 그룹의 문제를 해결하니 서씨 가문에서 찾아와서 혼담을 넣은 거야.” 청아한 목소리가 울리자 서진하의 걸음이 순간 멈칫하더니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서씨 가문에서 들이고 싶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서진하, 넌 누구보다 잘 알 거야.” 서진하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고 유설이를 괴롭힐 핑계가 되지는 않아!” “문유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내 친구를 괴롭히니까 내 친구를 지킨 것뿐이야.” “양심이 없는 게 누구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말 한마디로 문씨 가문이 행한 그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마. 그리고 문유설, 네 지능과 센스가 이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차가운 목소리는 아주 묵직하게 한 방을 날렸고 이야기를 마쳤을 때 그 마른 여자는 이미 두 사람을 지나친 뒤였다. 사람들이 아직 이해를 하지 못했을 때, 환갑연의 주인공인 지 회장이 열정 어린 얼굴로 정지연을 맞이하는 것이 보였다. “지연아, 드디어 왔구나! 내가 몇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내 체면도 안 봐주려는 건 줄 알았지 뭐니.”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정지연이 선물을 건넸다. “마음 썼다. 가자, 너에게 내 친구들 소개해 주마. 그 녀석들에게 내가 만난 학생 중 제일 뛰어난 학생을 보여줘야겠어. 질투 나서 정신 못 차릴 게 분명해!” 지 회장은 배시시 웃으면서 정지연을 토닥이더니 그녀를 끌고 휴게실로 향했다. 파티 주인공의 태도를 보면 정지연에게 큰 뒷배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다음 순간, 모두의 시선이 임시아에게로 향했다. 문씨 가문의 체면을 빌려서 들어온 것이라고 했었는데. 지금 광경을 봐서는 문씨 가문의 체면 때문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직접 초대한 게 분명해 보였다. 임시아는 뺨이라도 맞은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순간 부끄러움을 참지 못한 그녀는 발을 쿵쿵 굴렀다. 정지연은 대체 언제부터 지회장이랑 저렇게 가까워진 것이란 말인가? …… 그리고 그 시각, 연회장 위층의 베란다 쪽에서 바다같이 깊고 고요한 눈동자가 이 모든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뭘 보는 거야?” 맑은 목소리가 현재의 정적을 깨버렸다. 주민환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민우명은 술 두 잔을 들고 그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래쪽에는 그저 평범한 연회나 다름없었다. “별거 아니야.” 주민환은 담담하게 시선을 거두었다. 이곳에서 그는 며칠 전에 막 자신과 혼인 신고를 해놓고 그 며칠간 아예 사라져 버린 여자, 정지연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그녀는 현재 처지가 애매한 것 같은데 아주 진중한 모습으로 조금의 당황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정신력이 꽤 대단한 듯 보였다. 돌아온 지 이제 한 달인데 선을 몇 번이나 봤다고? 내내 솔로인 것도 다 저 서진하라는 남자 때문인 건가? 주민환은 냉소를 흘릴 뿐, 나설 생각은 없었다. 여사님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는데, 얼마나 대단한지 조금 두고 보다가 더는 못 버틸 때 돈 몇 푼 쥐어주고 깔끔하게 정리할 생각이었다. 여자를 정리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니었다. 정리가 안 됐다면 그건 돈이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정지연도, 아마 같은 부류일 것이다. “여기로 피신 온 거야?” 민우명은 술을 다시 빼앗아 오더니 홀랑 마셔버렸다. “돌아오자마자 시끄럽던데. A 대에 한 번에 1400억 기부라니, 정말로 A 대부터 시작하려고?” “A 대의 수재들은 외국보다 못하지 않아. 실전을 경험할 충분한 조건은 A 대쪽이 더 필요하지.” 주민환의 담담한 대답에 민우 명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망설이며 말했다. “난 그냥 이 일에 더 긴 시간이 필요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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