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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장

하얗게 질린 육정은 손을 씻는 손만리를 가리키며 당황해서 벽을 잡고 일어섰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런 고급스러운 파티가 처음이다 보니 신이 나서 술을 꽤나 퍼먹고 난 그였다. 그 바람에 그녀의 매력적인 웃는 얼굴이 흔들려 보였다. 그 얼굴이 수백 개로 쪼개져 서서히 그에게 다가오는 듯 했다. 숨이 막혔다! 그는 놀란 나머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횡설수설했다. “소, 소만리! 왜 나한테 들러붙어서 그래! 소, 소만영한테나 갈 것이지! 왜 나한테 이래!” 두려움에 떠는 육정을 보며 소만리는 또각또각 다가가더니 한쪽 입 꼬리를 씩 올렸다. “왜 소만리의 귀신이 들러붙냐고 물어보는 건가? 본인이 제일 잘 아실 텐데?” “으악! 난 몰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복수를 하려거든 소만영을 찾아가란 말이야! 나한테 이러지 말고!” 육정은 남자화장실로 도망쳤다. 공포가 극에 달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한참을 기다려도 밖이 조용하자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어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더 무서워졌다. 정신을 차리려고 물을 틀어 세수를 했다. 그러나 아무리 찬물로 씻어봐도 머릿속에서 소만리의 웃는 얼굴이 씻겨나가지 않았다. 소만리는 파티장으로 돌아왔다. 이쪽은 분위기가 좋았다. 귀빈들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소만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모진의 할아버지를 찾아냈다. 그러나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초조한 나머지 모든 걸 확 밝혀버리고 싶은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지금 이 상황을 제대로 다루려면 계속 가면을 쓰고 있어야 했다. 소만영은 소만리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그녀를 괴롭힐만한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수상쩍게도 기모진이 소만리의 곁으로 가서 머리를 숙여 그녀의 귀에 대고 귀엣말을 속삭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기모진이 먼저 팔을 뻗어 소만리에게 팔짱을 끼도록 하는 게 아닌가! 소만영은 주먹을 확 움켜쥐었다. 얼마나 힘을 주었던지 들고 있던 와인 잔을 거의 깨트릴 뻔했다. 그녀는 기모진이 소만리를 데리고 할아버지에게 가는 것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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