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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장

안나는 호텔을 나온 뒤 곧장 고승겸의 집으로 갔다. 서재. 한가롭게 찻잔을 기울이고 있던 고승겸은 안나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바로 앞에 꼼짝도 하지 않는 남자를 보며 안나는 약간 조급한 기색을 띤 채 그에게 다가갔다. “겸이 오빠. 다 끝내고 왔어. 기모진은 내일 제시간에 파티에 나타날 거야.” 고승겸은 가늘고 긴 손가락을 들어 앞에 놓인 책을 아무런 표정 없이 훑어보았다. “기모진이 네 말을 믿는다는 거 정말 확실한 거지?” 안나는 확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소만리를 데리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방법이 된다고 생각하면 덤빌 거야.” 이 말을 듣고 고승겸은 아주 흡족한 듯 책을 덮고 그제야 신비로운 검은 눈동자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래서 내가 널 이 대문을 드나들 수 있게 하는 거야. 아직 이용할 가치가 있거든. 그러니 네 분수를 잘 아는 게 좋을 거야. 그 가치조차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라구.” 안나는 얼굴빛이 바뀌었고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고승겸을 바라보며 다짐하듯 말했다. “겸이 오빠, 다시는 바보 같은 짓 하지 않을 거야. 오빠가 날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아. 난 그냥 예전처럼 친구로 지내더라도 만족해.” 안나가 전전긍긍하며 말을 마치자 마침 누군가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승겸, 나야.” 소만리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입구에서 들려왔다. 고승겸은 차갑게 안나를 쳐다보고는 몸을 일으키며 직접 서재 문을 열었다. 소만리는 발걸음을 옮기며 책상 옆에 서 있는 안나를 올려다보았다. 소만리의 시선을 마주한 안나는 혹여나 소만리가 양이응과 자신이 결탁한 사실을 알아차릴까 봐 당황스러워했다. 다행히 소만리는 이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승겸, 나 거의 다 준비됐어. 이따가 아버님 만나러 갈 거지?” 고승겸은 시중을 시켜 소만리를 정성껏 꾸미게 했다. 예쁘게 꾸민 소만리를 보는 고승겸의 눈에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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