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을 보자 차서아는 가슴이 움찔거렸다.
분명 꼭꼭 숨겼다고 했는데 윤건우가 대체 어떻게 발견한 걸까?
그녀는 한참 당황해하다가 마침내 뭔가 떠오른 듯 말을 더듬으며 해명했다.
“내일 부모님 기일이라 미리 준비한 거예요. 함께 다 태워드리려고요.”
윤건우는 그제야 잡생각을 버리고 또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내일 나랑 같이 가.”
“아니에요. 삼촌은 채린 언니 하는 일이나 도와주면 돼요. 전에는 제가 줄곧 삼촌 귀찮게 굴고 짐만 돼드렸네요. 이제 더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윤건우는 같이 가주겠다고 하면 그녀가 엄청 기뻐할 줄 알았는데 단호하게 거절할 줄이야. 그가 의아한 눈빛으로 변했을 때 차서아는 이미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녀는 또다시 달력을 한 장 찢어서 휴지통에 버렸다.
이제 네 날만 남았다.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윤건우는 방금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넌 나한테 짐 덩어리가 아니야.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그의 목소리가 워낙 낮다 보니 진작 방에 돌아간 차서아는 들을 리가 없었다.
디데이가 4일 남았을 때 차서아는 홀로 부모님 묘지에 찾아갔다. 묘비 앞에 도착한 후 꽃다발을 내려놓고 부모님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는데 여전히 기억 속 익숙했던 자상한 미소였다.
그녀는 두 무덤 사이에 앉았다. 마치 예전에 부모님 사이에 앉은 것처럼 말이다.
“아빠, 엄마, 두 분은 이제 환생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고집스럽다고 너무 원망하진 마세요. 저는 환생을 못 하는 대가로 7일이라는 시간을 벌었거든요.”
“전에는 항상 부모 있는 애들이 부러웠어요. 왜 쟤네는 엄마, 아빠가 다 있는데 난 없냐고... 근데 나중엔 부럽지가 않더라고요. 내겐 삼촌이 있으니까. 날 아껴주고 잘 챙겨주고 모든 사랑을 내게 퍼붓는 삼촌이 있어서 정말 남부럽지 않았어요. 그래서... 윤리에 어긋나게 삼촌을 좋아해 버린 것 같아요.”
“그러다 이제야 알아챘어요. 나란 존재가 삼촌에겐 짐 덩어리였더라고요. 삼촌도 새 가정을 이룰 테니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상에 오직 나만 외롭게 혼자였어요.”
“속세가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다음 생엔 안 오려고요. 난 이 결정 후회하지 않아요. 다만 죽기 전까지 누군가에게 제대로 사랑받아보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 유감스러울 뿐이에요.”
차서아는 무덤 앞에서 엄마, 아빠와 한참 얘기를 나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은 후에도 그녀는 바로 떠난 게 아니라 이곳의 직원을 찾아갔다.
묘지 직원과 상의 끝에 차서아는 부모님 무덤 옆에 본인 무덤도 하나 구매했다. 이렇게 되면 죽어서는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으니 그나마 소속감이라는 게 생기니까.
묘지에서 나온 후 그녀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과 윤건우한테서 전에 받은 선물들까지 전부 팔아치웠다. 이건 꽤 쏠쏠한 수입이었다.
그녀는 이 돈을 전부 윤건우에게 돌려줄 예정이다. 10년 동안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차서아는 그 돈을 은행카드에 넣고 다시 별장으로 돌아왔더니 어느덧 늦은 밤이었다.
이번엔 윤건우가 집에 없어서 꽤 홀가분했다.
차서아는 그 카드를 들고 몰래 서재에 가서 책상 서랍에 숨겨두었다.
이제 막 떠나려 할 때 서재가 조금 어수선하다는 걸 발견했다. 윤건우가 이제 막 일을 마쳐서 그런 탓인지 뭔가 정리정돈이 안 된 느낌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그 서류들을 둘러보다가 결국 정리에 나섰다. 그때 문득 부주의로 서랍을 하나 열었는데 다시 닫으려고 내려다본 순간 멍하니 넋을 놓고 말았다.
서랍에 든 물건은 글쎄 두껍게 쌓인 연애편지였다.
차서아는 숨이 턱 막혔다. 무심코 편지를 들자 놀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편지들은 삼촌이 쓴 걸까? 삼촌이 연애편지도 쓴다고? 대체 누구한테 썼지?’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차서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넋 놓고 있을 때 윤건우가 마침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차서아의 손에 쥔 연애편지를 보더니 안색이 확 돌변했고 당혹감에 목소리까지 떨렸다.
“누가 내 물건 뒤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