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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다음날 차서아는 일찍 깨나서 주방으로 향했는데 이미 누군가가 안에 있었다. 윤건우가 앞치마를 두르고 아침을 차렸고 이채린은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윤건우는 거부하긴커녕 다정하게 뒤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토록 애틋한 광경에 차서아는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그땐 집에 가정부가 매우 많았는데 윤건우가 업무가 바빠서 외박하기가 일쑤이니 가정부들이 어린애였던 차서아를 만만하게 여기고 집안일도 느슨히 하면서 가끔은 그녀의 끼니까지 거슬렀다. 나중에 윤건우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가정부를 몽땅 자르고 오직 차서아만을 위해 요리를 배웠다. 그러더니 하루 세끼를 꼼꼼하게 챙겨주는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이 남자를 좋아할 수가 없다. 이채린이 만약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차서아 또한 두 사람을 축복해줄 것이다. 그녀는 묵묵히 시선을 떼고 어느샌가 또다시 그 달력 앞으로 다가갔다. 이채린이 언제 나왔는지 달력 앞에 서 있는 차서아를 보더니 불쑥 질문을 건넸다. “이 디데이 달력은 대체 어디에 쓰는 거야? 왜 고작 7일밖에 없어?” 윤건우도 무심코 달력을 쳐다봤다. 두 사람 모두 달력에 시선이 쏠리자 차서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충 핑계를 둘러댔다. “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놀러 나갔다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산 거예요.” 참 형편없는 핑계지만 윤건우는 더 따져 묻지 않고 곧장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오늘은 채린이랑 단둘이 데이트하러 갈 거야.” 이렇게까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으면 차서아가 난리 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얌전히 고개만 끄덕였다. “재밌게 놀아요.” 예상했던 반응이 없으면 윤건우도 기뻐해야 할 텐데 차서아를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바로 이때 이채린이 불쑥 입을 열었다. “넌 어차피 집에만 있을 거잖아. 우리랑 함께 나가서 놀래?” 갑작스러운 초대에 차서아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결국 거절했다. “선약이 잡혀서 못 갈 것 같아요. 오늘 친구랑 작별인사를 하기로 했거든요. 두 분이 좋은 시간 보내세요.” 대학교 개강일을 보름 앞둔 시각, 친구들은 모임에서 저마다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차 있었지만 유독 차서아만 구석에 홀로 앉아 아무 말도 없었다. 그녀는 이제 다섯 날만 남았으니까. 5일 뒤에 완전히 이승을 떠날 텐데 미래가 웬 말일까? 이때 누군가가 줄곧 침묵하는 그녀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서아 넌 너희 삼촌 좋아하잖아? 어때? 방학이 끝나기 전에 네 사람으로 만들 수 있겠어?” “그래, 서아야. 남자가 대시하는 건 어려워도 여자가 대시하는 건 금방 성공한다잖아. 두 사람 어차피 혈연관계도 없으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일단 덤벼!” 이 일을 언급하니 모두가 흥분하며 그녀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주었고 심지어 누군가는 아예 잠자리부터 화끈하게 가지라고 했지만 차서아는 그녀들을 향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나 이제 그럴 일 없어. 더는 삼촌 좋아할 수도 없고.” 모임은 금방 끝났다. 떠나기 전 차서아는 친구들과 일일이 작별을 고했다. “소희야, 줄곧 바라던 학교에 붙은 걸 축하해. 앞으론 꽃길만 걸어.” “윤지야, 넌 몸도 안 좋은데 매일 아침을 거르기가 일쑤더라. 이제 제 몸 꼭 챙겨야 해.” “유나야, 이서야, 너희들 항상 그리울 거야.” “...” 그녀는 한 사람씩 안아주면서 진지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이에 친구들이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서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고별식이라도 하게? 앞으로 안 볼 거야 우리? 걱정 마. 우리 비록 다 다른 대학이지만 절대 널 잊을 리는 없어. 우리 우정 영원하잖아.” 인사를 마치고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갔고 차서아는 맨 마지막에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슬픈 감정을 추슬렀다. ‘이제 영원히 못 보겠지, 얘들아?’ “잘 가, 내 친구들.” 차서아가 집에 돌아왔을 때 윤건우는 음침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주위를 쭉 둘러봤지만 이채린이 안 보였다. “채린 언니는요?” “출장 갔어.” 차서아는 그의 대답에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머리만 끄덕일 뿐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때 윤건우가 문득 물건을 한 보따리 꺼냈다. “거기 서!” “이 유골함이랑 수의는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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