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장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정승진은 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이가인을 화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화를 내기 전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에는 내가 말실수를 했어. 난 널 협박할 생각은 없었어. 우리 일은 사람들에게 한 마디도 안 꺼낼게.”
이가인은 감동하지 않았다. 다만 역겨울 뿐이었다.
정승진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본능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지금 날 보면 역겨운 거 알아. 일단 너 화 풀리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이가인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정승진은 몸을 돌려 나갔다.
이가인은 그가 황급히 도망쳤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정승진이 그녀와의 결혼을 빌미로 염혜원을 협박하는 걸 들었었다.
그녀와의 결혼이 염혜원의 협박에 쓰일 줄이야.
어쩐지 우스웠다. 정승진과 염혜원 모두 그녀와의 결혼을 한낱 웃음거리로 여기는 것 같았다.
병원 의료진들은 늘 평범한 사람들보다 몇 시간 정도 일을 빨리 시작했기에 저녁 9시가 되기 전에 정형외과 사무실은 이미 불이 꺼져 있었다.
이가인은 좁고 작은 접이식 침대 위에 옆으로 누워서 눈을 뜨고 있었다. 자고 싶은 게 아니라 너무 괴로워서 잘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정승진의 출현으로 이가인은 빠르게 고현우를 잊었다. 고현우는 그녀와 정승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었고 그때 이가인은 자신만만하게 아니라고 반박했었다.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쓰레기장을 뒤지고 싶은 마음은 없어.”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예언일지도 몰랐다.
혜임 병원 사람들이 그녀가 고현우와 정승진을 발판으로 삼았다는 걸 안다면 어쩌면 그녀는 의료업계에서 가장 큰 웃음거리가 될지도 몰랐다.
이가인은 이따금 주제 파악을 못 한 자신을 탓했다가, 이따금 정승진을 죽이고 싶은 생각을 했다.
어두운 병실 안에서 이가인은 아무 말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베개는 이미 눈물로 잔뜩 젖은 상태였다.
이때 문밖의 벤치에는 정승진이 앉아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넋을 잃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엔 복도에 의료진이나 환자들, 환자의 가족들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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