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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장

그때, 빨간 머리 남자의 얼굴색이 달라졌다. “서준 형님... 왜 여기 계세요?” “사과해.” 고서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 뼛속에 새겨지기라도 한 듯 익숙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고서준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이는 그를 더 차가워 보이게 했다. 빨간 머리 남자는 기운이 빠진 듯 두 눈썹이 처져있었다. 그는 손을 모으고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누구에게 사과하는 거야?” 고서준의 말투에는 인내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는 순간 바른 자세를 취하고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무례했어요. 너그럽게 봐주실 수 있을까요? 용서해 주세요.” 나는 그를 한 번 쓱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고서준을 피해 다른 쪽으로 돌아서서 떠났다. 그러자 고서준은 나를 잡으려는듯 손을 뻗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내 곁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차 타고 가. 늦은 시간에 여자가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해.” 나는 그를 무시해 버리고 때마침 도착한 택시에 타려고 했다. 택시에 타고 있던 사람이 내리자마자 바로 차에 타서 주소를 말했다. 택시는 떠나자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머릿속에 고서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많이 야위었고 안색도 전보다 좋지 않았다. 병에 걸리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따라서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의 야윈 모습이 떠오르자 그나마 남아있던 고서준에 대한 연민의 감정도 사라져 버렸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웠지만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할머니 생각이 너무 많이 났고 정말 너무 그리웠다. 지금은 정서현도, 나민준도 없었기에 나는 더 이상 억지로 강한 척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처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어나서 할머니의 방으로 걸어갔다. 방 안에는 아직 할머니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할머니를 그리워하다가 결국 잠들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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