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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장

나는 나민준과 함께 아파트 아래까지 내려왔다. 밤에 술까지 마셨던지라 콜택시를 불렀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나민준은 너무도 다급한 모습이었기에 나는 결국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그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핸드폰을 꽉 잡았다. “부모님이 또 싸우셨대. 그런데 이번엔 어머니가 손목을 그으시면서 자해했대.”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분명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피곤함이 느껴졌다. 나민준은 나와 할머니가 걱정되어 은산시에 남아 있었던 것이었기에 나는 다소 죄책감이 들었다. “죄송해요. 저랑 할머니 때문에...” “수아 씨랑 할머니가 왜?” 나민준은 말허리를 자르며 손을 들어 내 코를 잡으면서 자조적으로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이러시는 게 한두 번도 아니잖아. 다른 집에서는 웃음소리만 울려 퍼진다고 하는 데 우리 집은 그릇 깨지는 소리만 들리잖아. 내가 기억하기론 난 설날 전날 밤도 오늘처럼 조용히 밥을 먹으면서 보낸 적 없었어. 그리고 난 확실히 세남구 프로젝트 때문에 은산에 남아 있던 것도 맞아. 집으로 돌아가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이 보기 싫어 여기 있던 것도 맞고.” 말을 마친 나민준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의 미소를 보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같은 상처를 공유한 사람끼리 느끼는 동질감처럼. “선배님 어머니는 괜찮으신 거예요?” “응, 괜찮아. 손목 그으신 것도 이젠 능숙해져서 보기엔 심각한 것 같아도 목숨 잃으실 정도로 긋지 않았을 거야.” 예약한 택시가 도착했다. 나민준은 웃으며 차 문을 열었다. “갈게.”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가 다시 돌아와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멍해진 나의 귓가에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포옹 한 번만 해줘. 힘을 낼 수 있게.” 평소의 나민준은 언제나 가벼운 농담과 제멋대로인 듯한 방탕한 이미지로 살아갔지만 그건 다 겉모습일 뿐이다. 사실 그는 결단력 있고 뛰어난 안목과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두 번의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이렇게 무기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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