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계약 결혼
태정 그룹, 꼭대기 층.
똑똑.
배원우가 문을 두드리며 보고했다.
“대표님, 임다인 씨 오셨습니다.”
입구에 서서 내부를 바라보던 임다인의 눈에 커다란 통유리창을 마주 보고 서 있는 훤칠한 남자가 들어왔다.
비록 뒷모습에 불과했지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온몸이 바짝 긴장했다.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심호흡하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
“태윤 씨.”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지만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서태윤이 천천히 뒤돌아 그녀를 쳐다보는 순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시크한 분위기의 하늘색 원피스는 아름답고 도도한 얼굴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으며, 매력과 기품이 공존했고 여성스러운 겉모습과 강인한 내면이 대조를 이루었다.
예상외의 옷차림에 서태윤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재빨리 감정을 추스른 다음 턱을 치켜올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쌀쌀맞은 태도를 보였다.
“앉아.”
임다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발걸음을 옮겨 검은 가죽 소파에 엉덩이를 살포시 기댔다.
서태윤도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두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배원우는 임다인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고 사무실을 나서면서 문을 닫았다.
서태윤의 사무실에서 나온 배원우를 보자 비서실의 직원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실장님, 방금 대표님 사무실에 들어간 여자는 누구예요?”
“맞아요. 대표님이랑 무슨 관계죠?”
배원우는 흘끗 쳐다보며 단호한 어조로 경고했다.
“괜히 큰코다치기 싫으면 대표님 일에 신경 쓰지 마세요.”
그제야 사람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도 단지 대표님의 사생활이 궁금한 탓에...”
“어쩌면 미래의 태정 그룹 안주인이 될 가능성도 있겠네요?”
“전 그럴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봐요.”
곧이어 배원우에게 일제히 시선이 쏠렸고 일말의 단서라도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배원우는 시종일관 굳은 얼굴로 시치미를 뗐다.
“나도 모르니까 쳐다보지 마세요.”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어찌 왈가불가하겠는가?
게다가 상사의 사생활을 일개 비서 따위가 감히 억측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반면, 사무실 안의 공기는 숨이 막힐 지경이며 마치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임다인은 초조한 마음에 주먹을 움켜쥐었고,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침묵을 깼다.
“태윤 씨, 저한테 할 말이 있으시다고...”
서태윤은 짧게 대답하고 검은색 폴더를 내밀었다.
“확인해 봐.”
임다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손으로 집어 들었다.
커버를 펼치자마자 ‘혼전 합의서’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서태윤이 불쑥 끼어들었다.
“결혼해줄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계약 결혼에 불과해.”
그의 말에 임다인은 비로소 내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계약 기간은 1년이며 이혼하고 나서 보상으로 200억 현금과 별장 두 채를 줄게.”
무미건조한 말투와 차가운 태도는 마치 사업을 논하는 사람 같았다.
“만약 문제없다면 계약서에 사인하고 즉시 혼인신고 하러 가자.”
임다인은 대답하기를 머뭇거렸다.
계약서에 적힌 조항들을 살펴보며 서서히 생각에 잠겼다.
1년이면 충분한 것 같기도 했다.
묵묵부답하는 그녀를 보자 서태윤이 한마디 보탰다.
“시간이 필요하...”
“아니요. 할게요.”
임다인은 오히려 서태윤이 번복할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혼 위자료는 필요 없어요.”
어찌 됐든 그를 이용해서 할아버지가 남긴 제인 그룹의 주식을 상속받기 위해 꼼수를 쓴 사람은 본인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이혼 보상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서태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보상은 당연한 거니까 주는 대로 받아.”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임다인도 딱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내 책상 위에 놓인 볼펜을 들고 계약서 마지막 페이지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름을 서명했다.
합의를 보고 나서 두 사람은 곧장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전체 과정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접수증을 바라보는 임다인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가 결혼하다니?
서태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다인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관찰했다.
두 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거렸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후회하는 건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임다인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니요.”
서태윤은 믿기지 않는 듯 그녀를 힐긋 쳐다보더니 쌀쌀맞게 비아냥거렸다.
“버스는 이미 떠나갔어. 본인의 선택이니 후회는 없길.”
임다인은 입을 꾹 다물고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감히 엄두가 안 났을뿐더러 불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혼인신고를 한 이상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서태윤은 접수증을 챙겨서 기다린 다리를 움직이더니 입구에 주차된 검은색 카이엔을 향해 걸어갔다.
임다인도 재빨리 손에 든 접수증을 가방에 넣고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