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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응어리

“이 싸구려 같은 년이!” 그리고 뒤통수의 머리카락을 덥석 움켜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임다인은 강제로 턱을 치켜든 채 무심함과 경멸이 가득한 눈동자를 마주했다. “부자에게 빌붙었다고 해서 출세할 거라는 착각은 버려. 제 주제나 알고 덤비지? 넌 그냥 부모도 없이 버림받은 불운아이자 몸이나 파는 창녀에 불과하니까.” 말을 마치고 손아귀에 힘을 더 주었다. “내 앞에서는 언제나 가장 비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 감히 날 능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 이내 한 바탕 화풀이하고 나서야 임다인의 머리카락에서 손을 뗐다. “넌 영원히 내 발끝에도 못 미칠 거야.” 임마리는 두 눈을 부라리더니 의기양양하게 뒤돌아서 2층으로 올라갔다. 양손으로 주먹을 꽉 쥔 임다인은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증오를 느꼈다. 점점 멀어져가는 임마리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더니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참아주는 거야. 그동안 네가 저질렀던 짓에 대해 차근차근 되갚아줄 테니 두고 봐.’ 방으로 돌아간 임다인은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 속 희미한 손바닥 자국이 번진 얼굴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었다. 이때, 요란한 벨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울적하던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다름 아닌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육지현이다. 어릴 때부터 두 집안은 워낙 각별한 사이라서 자주 함께 놀곤 했었다. 나중에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육지현 가족이 해외로 이주하면서 관계도 점차 소원해졌다. 다시는 연락이 닿지 않을 줄 알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육지현과 청산시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반면, 육지현의 부모님은 임씨 가문의 변고를 전해 듣고도 거리를 두기는커녕 수양딸로 받아들이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청산시에서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마치 친딸처럼 그녀를 돌보았다. 덕분에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모처럼 온정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임다인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고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 휴대폰 너머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내 전화 받기 싫어?” “그게 아니라 워낙 바쁜 사람이잖아.” “일이 아무리 많아도 너한테 안부 인사는 전해야지?” 임다인의 가슴이 금세 훈훈해졌다. 육지현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어때? 이제 집으로 돌아갔을 텐데 괜찮아? 큰아버지네 가족한테 아직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어?” 임다인의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갔고 무심한 눈빛은 착잡함이 엿보였다. “아니야.” 비록 부인했지만 육지현을 속이기에 역부족이었다. “널 또 못살게 굴었지?” 임다인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지현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집에 가면 안 된다고 했지? 기어코 고집을 부리더니, 물론 부모님 유품을 되찾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다른 방법을 시도해볼 수도 있잖아. 임씨 가문이라는 감옥에서 겨우 벗어났으면서 왜 제 발로 돌아간 거야? 고생을 자초하는 셈인데! 다인아, 큰아버지 집에서 구박받지 말고 다시 청산시로 와. 부모님 유품은 내가 어떻게든 받아낼게.”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임다인은 한숨을 푹 쉬었고 두 눈에 슬픔이 서서히 차올랐다.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하는 일이야.” “다인아...” 육지현이 설득하려던 찰나 임다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게 항상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어. 왜냐하면 난 절대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휴대폰 너머로 침묵이 이어졌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남해시에 있는 큰아버지 집에 돌아와 제인 그룹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교통사고의 진상은 영원히 미궁 속으로 빠지겠지. 우연이든 고의든 철저히 조사해서 밝혀낼 거야.” “하지만...” 임다인의 목소리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걱정 안 해도 돼.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어.” 남해시에 돌아와 임씨 가문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녀는 야망을 감추고 일부러 나약하고 온순한 척 연기했다. 그리고 매사에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스스로 되새겼다. 어쨌거나 현재로서 발톱을 숨겨야만 나중에 더 멋지게 반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호한 그녀의 태도에 육지현도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그래. 하여튼 이것만 기억해. 언제나 너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게.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야. 다들 항상 네 편이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 “알았어.” 임다인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목이 살짝 메었다. 육지현이 말했다. “교통사고의 내막은 나도 몰래 조사해보고 단서가 생기면 바로 알려줄게.” “고마워.” “우리 사이에 인사치레는 생략하지?” 임다인이 환하게 웃더니 진지한 어조로 대답했다. “인사치레일지언정 고맙다는 말은 꼭 하고 싶어. 그리고 양부모님께도.” “그래, 알았어.” 육지현이 문득 화제를 돌렸다. “참, 다음 달에 남해시에 갈 일이 있는데 밥이나 같이 먹자.” “좋아.”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었다.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던 와중에 결혼 소식을 알려주려고 했지만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다시 삼켰다. 어쨌거나 1년 뒤에 서태윤과 이혼하기로 했으니까. 결국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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