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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제대로 된 연기

임다인은 천천히 다가가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고 빈 잔에 천천히 술을 따랐다. 고상한 기품이 일거수일투족에서 묻어났다. 서태윤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이상 허세를 조금 부려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씀을 드릴게요. 제인 그룹이 신사동 개발 건설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안 될까요?” 비록 말투는 온화했지만 구구절절 그를 겨냥했다. 무슨 뜻인지 곧바로 알아챈 안범희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다인... 아니, 사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이내 소파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무릎을 털썩 꿇었다. “제가 눈치 없이 무례를 범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서 대표님의 아내인 줄 꿈에도 몰랐으니 제발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주세요.” 안범희는 황급히 술잔을 건네받았다. 이마와 등은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목소리가 저절로 떨렸다. “신사동 프로젝트는 제인 그룹이 담당할 수 있도록 약속할게요.” 말을 마치고 나서 잔에 든 술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임다인은 그를 내려다보며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 결국 안범희는 마지못해 술병을 들고 병나발을 불기 시작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술이 바닥을 보이고 나서야 임다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여자라서 한 번 삐지면 쉽게 풀리지 않거든요.” 안범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우람한 몸집과 싸늘한 표정의 경호원들이 어느새 그를 철옹성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임다인의 뒤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는 배원우를 발견했다. “사모님, 정말 잘못했어요.” 안범희는 스스로 뺨을 때리며 이렇게라도 용서를 빌고자 했다. “멍청한 놈! 짐승! 어젯밤엔 제가 당해도 쌌어요. 감히 사모님의 심기를 건드리다니...” 차라리 언급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어제 있었던 일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불쾌한 기억이 마치 거대한 해일처럼 그녀를 덮쳤다. 그나마 악을 쓰고 반항하며 술병으로 머리를 내리친 틈을 타 룸에서 도망쳤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쓰레기 같은 놈에게 봉변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더욱이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서태윤을 만나 도움을 받지 못했더라면... 오늘 밤은 큰코다칠 게 뻔했다. “만약 내가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고 태윤 씨랑 전혀 상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임다인은 양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고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나쁜 짓을 했는지 아마 본인도 잘 모르겠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범희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닙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맹세해요! 사모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임다인이 냉소를 짓더니 두 눈에 혐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안 변해요.” 안범희는 연신 절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사모님, 잘못했어요. 진짜 반성할게요.” 이때, 배원우에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 저벅저벅 걸어가 임다인의 곁에 서서 나지막이 말했다. “사모님, 시간이 늦었으니 먼저 돌아가시는 게 어때요? 나머진 저희한테 맡기세요.” “네.” 임다인이 룸을 나설 때까지도 안범희의 애원하는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비로소 조용해졌다. 그녀는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고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에덴 클럽을 나서자 입구에 멈춰선 검은색 카이엔의 뒷좌석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이내 시크하면서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태윤 씨?” 서태윤은 무심하게 쳐다보더니 한마디만 했다. “타.” 말이 끝나자 임다인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앞으로 다가가 뒷좌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은 다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나지막이 물었다. “여긴 웬일이에요?” “우연히 지나가던 길이었어.” 간결한 대답은 왠지 서먹하게 느껴졌다. 임다인은 딱히 신경 쓰지 않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난 또 일이 있어서 찾아온 줄 알았죠.” 곧이어 서태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어색한 표정으로 목을 가다듬더니 느릿느릿 말했다. “용건이 있는 건 사실이야.” 임다인이 옆으로 돌아앉아 빤히 쳐다보았다. “뭔데요?” “이미 계약도 체결했으니 나중에 할머니의 불시 검문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와.”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임다인은 넋을 잃고 말았다. 지금 동거하자는 건가? 다시 말해서 매일 같이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서태윤이 고개를 돌려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이제 와서 번복할 셈인가?” 임다인은 입만 벙긋할 뿐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대답했다. “같이 사는 건 상관은 없지만 내일 이사해도 될까요?” 서태윤이 동의했다. “내일 사람을 보내 데리러 갈게.” “네.” “그리고 며칠 뒤에 가족 모임이 있는데 너도 참석할 거야. 그때 가서 우리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생각이야.” 이내 머뭇거리다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서씨 가문은 워낙 대가족이라 인간관계도 복잡해서 빈틈을 보이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임다인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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