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장
김소연은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손에 쥐었지만 아무리 잡아도 불편하기만 했다.
눈빛이 어두워지고 차가워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대낮에 대체 무슨 일로 쉬고 있는 거지?’
그 여자가 그렇게나 애매하게 말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대체 무슨 이유로 쉬고 있는 걸까?’
생각할수록 안색이 나빠졌고 김소연은 스스로 다짐했다.
‘잘못된 기대를 품지 않기로 했잖아. 그 사람의 일은 이제 나와 상관없어야 해.’
그런데도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만약 정말 연인이나 여자친구가 있다면 그날 왜 애매하게 부정했을까? 거짓말쟁이. 왜 나한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주고 그림 작업을 도와주고 은근히 다가오는 행동을 했을까?’
“소연아... 아마 그냥 여직원일 거야.”
정서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넌 믿어? 그리고 어차피 계약 결혼인데... 그 사람 일은 나와 아무 상관 없잖아.”
김소연은 애써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 너희 집에서 밥 먹어도 되지? 나도 작업해야 해.”
“그럼! 우리 집에서 자도 괜찮아.”
정서우는 조심스럽게 응했다.
그날 밤 김소연은 정말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정서우의 집에서 머물렀고 엘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러자 김소연은 비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역시 해명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거겠지.’
다음 날도 그녀는 여전히 정서우의 집에 있었다. 그런데 강여진의 전화가 걸려왔다.
강여진이 걱정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노트북을 챙겨 다시 별장으로 돌아갔다.
강여진은 그녀의 어깨를 만지며 물었다.
“소연아, 너 혹시 그 녀석이랑 다퉜니?”
“아니에요.”
김소연은 태연한 척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왜 안 들어오나 했다. 그 녀석이 워낙 바빠서 너한테 신경을 못 썼을 수도 있어. 화내지 말고 이해해 줘, 응?”
‘어머님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느라 바쁘다는 걸 모르시겠지?’
김소연은 무심히 생각했다. 그때 강여진이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내가 너를 부른 게 아니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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