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장
엘 앞에서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김소연의 약하고 여린 모습은 알게 모르게 그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검은 눈동자가 얼핏 당혹스러운 빛을 띠더니 이내 차가운 냉기를 머금었다. 그는 얇은 입술을 혀로 한 번 훑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괴롭힘을 당했는데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난 소연 씨가...”
“제게 기회를 줬어야죠.”
엘이 냉랭한 태도를 누그러뜨린 걸 느낀 김소연은 점점 더 서운함을 느꼈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오늘 밤 절 괴롭힌 게 어디 김기태 씨뿐인가요? 엘도 이유도 안 묻고 저를 난처하게 만들었잖아요.”
“...”
김소연의 지적에 그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채 짧게 물었다.
“상처는 아프지 않아?”
“엘은 어떻게 생각해요?”
“누워. 내가 약 발라줄게.”
“괜찮아요...”
“그만 말해!”
엘은 단호하고도 냉정한 어조로 그녀의 말을 딱 잘라버렸다. 그러고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옷을 걷어 올리더니 허리를 살짝 눌러 가볍게 고정했다.
그의 손이 살결에 닿자 김소연은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이렇게 가까운 접촉은 처음이었다. 설령 약을 발라주기 위한 것이라 해도 그녀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엘, 좀... 좀 살살 해주세요...”
남자의 손가락은 길고 힘이 있었다.
김소연의 한마디에 남자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잠시 멈칫했다.
눈에 들어온 그녀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살결은 그의 손길이 닿자마자 붉어졌다.
목울대가 저도 모르게 천천히 움직이며 그는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소연 씨,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어떤 말이요?”
김소연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부적절한 타이밍에 듣는 사람을 헷갈리게 할 수 있는 말.”
엘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묘하게 관능적으로 들렸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말이 어쩐지 이상하게 들렸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런 뜻이 아니라 진짜 아파서 그런 거예요. 살살 좀 해달라는 뜻이었어요!”
서둘러 변명했지만 이미 엉뚱한 뉘앙스를 풍긴 말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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