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피의 서약피의 서약
By: Webfic

제18장

처절한 절규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엘, 미안해요. 내가 아이를 해쳤어요...’ 김소연은 온몸이 떨리며 절망 속에서 눈을 꼭 감았다. 발이 그녀의 배에 닿으려는 순간 그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갑자기 공중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상상했던 고통은 오지 않았다. 김소연은 주변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것을 느꼈다. 차가운 한기가 이곳을 얼려버린 것 같았다. 이상하게 이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김소연은 떨리는 손으로 배를 감싸안으며 주변을 살폈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자 눈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를 가리고 있었다. 남자의 체격은 웅장했고 그 존재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얼굴을 가린 가면 아래로 드러난 그의 윤곽은 차갑기 그지없었으며 주변 공기를 얼려버릴 만큼 냉혹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거침없는 몸놀림으로 모든 사내를 단숨에 제압했다. 그들에게 쉴 새 없이 주먹과 발길질을 퍼부었다. 쓰러진 그들은 바닥을 기며 비명을 질렀다. “엘?” 김소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그를 바라보며 아연실색했다. 출장을 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천사처럼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남자는 주먹을 거두고 천천히 돌아서서 기다란 다리를 굽혀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날카롭고 차가운 눈동자가 그녀를 샅샅이 훑었다. 흐트러진 옷차림과 밖으로 드러난 하얀 피부가 시야에 들어오자 그의 눈빛에는 서늘한 살기가 서렸다. “다들 꺼져!” 이 한마디는 구경하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동시에 김소연의 숨까지 멎게 만들었다. 그는 고급스러운 슈트를 벗어 그녀의 연약한 몸 위에 던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배는 괜찮아?” 엘의 차가운 기운에 압도된 김소연은 감히 대답을 피할 수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아랫배를 만져보고는 울먹이며 말했다. “아직 아이는 다치지 않았어요. 정말...” “어떻게 장담하지? 술집이 임산부가 놀러 올 곳인가?”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그녀를 향한 경멸과 자신의 몸조차 소중히 여기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대한 질책이 담겨 있었다. 김소연은 그 남자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건달처럼 보이는 그들, 그리고 찢어진 자신의 옷, 그가 뭔가 단단히 오해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엘이 본 그대로가 아니에요. 제가 여기 온 이유는...” 김소연은 잠긴 목소리로 설명하려 했지만, 엘은 그녀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는 듯 차갑게 등을 돌렸다. 아이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했으니, 더 이상 그녀를 신경 쓰고 싶지 않은 태도였다. 김소연은 마음속 억울함을 꾹 참아가며 비틀거리면서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가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했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모퉁이를 돌더니 차갑게 걸음을 옮겨 화려한 VIP 룸으로 들어가 버렸다. “형! 바람피우는 신부 잡아 왔어요?”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 가벼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하준은 문 앞에 서 있는 김소연을 힐끔 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형 신부가 몰래 술집에 온 걸 내가 못 봤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것도 룸까지 들어가는 거 말이에요. 내가 제때 알려주지 않았으면 형은 바람피우는 것도 몰랐을 거잖아요.” 고하준의 말에 김소연은 순간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가 출장 중임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여기 나타난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엘의 친구가 그에게 알려줬지만 상황을 완전히 왜곡해 버렸다. “김소연 씨가 이렇게 노는 걸 좋아하니 형도 즐겨야죠. 이 두 여자 내가 특별히 불렀어요.” “우리 형 잘 모셔!” 고하준은 짓궂은 표정으로 여자를 손짓해 불렀다. “정말 멋지세요!” 김소연은 두 여자가 그에게 바짝 다가가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남자는 그들을 거부하지 않고 특유의 냉담하고 고고한 태도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금 쓰고 계신 가면 진짜 신비로워요. 그리고 몸도 정말 좋으시네요...” 한 여자가 그의 단단한 가슴을 어루만지며 목소리를 떨었다. “마음에 들어?” 남자가 입을 열었다. 차가운 시선은 문 쪽을 향해 스치듯 지나갔다. “완전 마음에 들어요! 제가 술 한 잔 따라드릴게요.” 여자가 그의 무릎 위에 앉으려는 듯 다가가자 김소연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실망과 피로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구해주고도 무시하더니, 이제는 이런 모습까지 일부러 보여주는 건 혹시 복수라도 하려는 걸까? ‘어차피 계약 결혼인데 내가 뭘 관여할 자격이 있겠어...’ 김소연은 억울함을 꾹 삼킨 채 발길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명목상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가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엘을 반드시 집으로 데려가야 했다. 이대로 서로의 감정이 틀어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김소연은 빨간 입술을 꾹 깨물고 결국 용기를 내어 그가 있는 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