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소진명의 말에 멈칫하던 이유영은 이내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대답했다.
“진주대 미술 전공은 제가 항상 꿈꿔왔던 목표예요! 그런데 좋은 선생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지 못했고 아직은 제 그림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이유영은 자신이 겸손한 모습을 보일수록 나중에 전시 중인 그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소진명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괜찮아. 진심으로 예대 입시에 참가하고 싶은 거라면 나한테 연락해.”
소진명은 이유영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명함을 그녀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화가님!”
이유영은 달콤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그의 명함을 받았다.
곧이어 두 사람은 이번 전시회의 마지막 그림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 그림은 이번 전시회에서 가치가 가장 높은 작품이다.
이유영은 이곳에 오기 전 공부를 한 덕에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나 다름없는 작품의 내력을 손금 보듯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조사로 알아내 외운 정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이 그림은 화현에서 최고로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리는 한서원 화가님의 작품이죠. 한서원 화가님은 겸허한 분이시고 붓을 놓기 전에 세 점의 그림만 공개하셨어요. 공개한 세 점의 그림은 전부 개인 소장가의 손에 있고요. 그리고 눈앞의 그림은 그중 하나이죠! 길이가 3미터나 되는 [우리 강산]이라는 작품은 예전에 많은 화현의 유명 화가들이 모작했는데 가장 유명한 모작으로는 작년 진영우 화백님이 공개한 것이죠. [우리 강산]은 화풍이 웅장하면서도 디테일이 아주 대담해서 국내 전통적인 격식을 깼다고 말할 수 있어요. 당시 [우리 강산]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일부 평론가들은 이 그림이 명화의 정수를 잃었다고 비평했지만 완벽한 작품은 시간의 검증을 견뎌내는 법이죠. 불과 2년 만에 이 작품을 비평했던 사람들이 말을 바꿨어요. 그리고 한서원 화가님은 화현 화가계의 전설이 될 운명이었던 거죠...”
이유영이 마지막 작품 앞에서 당당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감상을 이어가자 주위 관람객들이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어린 나이에 그림에 대해 이렇게까지 연구하다니,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네요!”
“그러니까요. 우리 집 애는 그림 학원을 가라고 하니까 저와 냉전을 하더라니까요.”
“재능도 있고 노력까지 하니 앞으로 크게 될 아이에요!”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들은 오연주는 허리를 꼿꼿이 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디를 가든 옆에 이유영만 있으면 오연주는 언제나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자 주인공이 되었다.
오연주는 타인의 추앙 어린 시선을 받는 것이 아주 기꺼웠다.
그리고 이것은 오연주가 큰돈을 드여 이유영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오연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지아에게 향했다.
딸은 이유영 하나만으로 충분한데 무심한 하늘은 왜 이지아와 같은 쓸모없는 쓰레기까지 자신에게 던져준 것인지 오연주는 분했다.
이유영의 말에 소진명은 눈을 반짝였다.
“한서원 화가님을 알아?”
한서원은 화가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존재이지만 금방 그림을 접한 학생들에게 있어 비교적 생소한 인물이다.
게다가 한서원의 붓놀림은 생동감이 넘쳐 입문자가 쉽게 모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에 일반적으로 미술 선생님은 학생들이 기준을 잘 잡지 못할까 봐 특별히 한서원의 작품을 소개해 주지 않는다.
섣불리 한서원의 작품을 모방하다 되려 스스로의 화풍을 잃을 수가 있었다.
적어도 소진명이 가르치는 학생 중에 한서원을 아는 학생은 없었고 한서원의 배경과 작품에 대해 아는 학생은 더더욱 없었다.
“저도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에요.”
이유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도 제 능력의 한계를 알고 있어요. 지금은 기본기를 다질 때라 한서원 화가님의 작품은 감상만 할 뿐이지 감히 모방할 엄두도 나지 않아요.”
이유영의 대답을 들은 소진명은 더욱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스스로를 아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구나!”
옆에서 이유영의 발언을 들은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져 이유영은 한순간 군중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한편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모퉁이에서 이지아는 눈앞의 그림을 한번 바라보고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
이유영이 외워둔 내용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나서야 이지아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 작품은 모작이에요.”
이지아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녀가 입을 열 때 마침 주위가 조용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
순간 소진명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림 전시회에서 충분한 증거도 없이 한 작품을 모작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상당히 무례한 행위였다.
이것은 그림 전시회 주최측에 대한 무례이기도 하고 현장에 있는 관람객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점의 그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림이 모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체면을 깎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지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차가운 목소리로 반박했다.
“이번 그림 전시회는 강현시 문화제의 핵심 프로젝트인데 모작이 있을 리가 없잖아?”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마! 나이를 보아하니 너 아직 고등학생이지? 아무리 칭찬을 받고 싶어도 장소를 구분할 줄 알아야지!”
주변의 관람객들은 이지아의 얼굴을 보고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더군다나 이지아가 사람들 앞에서 [우리 강산] 작품이 모작이라고 말한 덕분에 그들이 그녀에 대한 혐오감은 한층 더 짙어졌다.
“어린 나이에 공부는 열심히 안 하고 말이야. 여기 전문가들이 이렇게 많은데 네가 끼어들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해?”
“소진명 화가님이 여기 계시는 거 안 보여? 화가님도 그림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는데 네가 어떻게 알아?”
“하하, 네 수준이 소진명 화가님보다 높다고 여기는 거야?”
여기저기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지아가 자신의 실력도 모른 채 주제넘는 말을 한다고 비아냥거렸고 일부 사람들은 기대 섞인 표정으로 소진명을 바라보았다.
만약 소진명이 직접 나서 설명을 한다면 이지아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소진명은 오연주 뒤에 있는 이지아를 냉랭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그림은 한서원 화가님이 직접 그린 거야! 너 누구 학생이야? 네 선생님을 데려와!”
“화가님, 죄송해요. 제 언니예요. 언니도 평소 명화를 좋아하는데 이해가 깊지 않아서 말실수를 한 거예요. 언니를 탓하지 말아 주세요.”
“이지아! 네가 입을 다문다고 해서 널 벙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여기 전문가들이 이렇게 많은데 네가 끼어들어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오연주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힘껏 이지아의 뺨을 내려치고 싶었지만 지켜보는 눈들이 많은 데다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 겨우 인내했다.
“언니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자신감이 없다는 거 알아. 언니도 인정을 받고 싶겠지. 그렇지만 이런 장소에서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나서 이야기해야 돼!”
말을 하며 이유영은 이지아의 곁으로 다가가 다정하게 그녀의 팔에 팔짱을 꼈다.
“죄송해요. 방금은 저희 언니가 헛소리를 한 거예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이유영의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더욱 분노했다.
“어떻게 언니가 돼서 동생보다 철이 없어!”
“학생 탓이 아니니까 사과할 필요 없어...”
사람들이 이지아를 향해 철이 없다고 비난을 쏟아내자 이지아는 이유영의 손을 떨쳐내며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 그림 앞에 당도했다.
평온한 이지아의 목소리에는 은연중에 상위자의 위엄과 자신감이 풍겼다.
“여기 있는 [우리 강산] 작품은 모작이 맞아요. 한서원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작품에 자신만의 독특한 사인을 남기는 습관이 있어요. 이 사인은 그림에 녹아들어 다른 사람은 전혀 눈치챌 수 없어요. [우리 강산]을 그릴 때 한서원 화가는 산봉 우리의 4분의 3 정도 되는 곳에 사인을 남겼어요. 바로 이곳이요. 그런데 이 그림에는 사인이 없어요!”
“하하하하하하...”
이지아가 말을 마치자 주위에서 갑자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든 사람들이 바보를 보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난 한번도 한서원 화가님에게 그런 습관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
소진명은 화가 난 눈빛으로 손가락을 들어 눈앞의 작품을 가리키며 고개를 돌려 이지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네 말이 진짜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인을 왜 너는 알아보는 거지?”
“소진명 화가님, 이런 잘난 체하는 멍청이와 말싸움을 벌일 가치가 없어요!”
“그저 능력도 없이 주위의 이목을 끌려는 수작이니까 혼자 날뛰도록 내버려두면 돼요!”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말을 얹으며 상황을 중재했다.
이유영은 다시 이지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언니, 그만해... 오늘 전시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운성 고등학교의 입학 정원을 따내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이렇게 함부로 말을 하면 사람들에게 더 안 좋은 인상만 심어주게 돼!”
이유영의 말에 주위 사람들이 이지아를 쳐다보는 눈빛에 경멸이 더해졌다.
“뭐? 주제도 모르고 운성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다고?”
“이런 외모와 지능으로 운성 고등학교 입학을 원한다고? 운성 고등학교가 아무 폐기물이나 수거해가는 쓰레기 수거장인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