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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다섯 살짜리 아이는 진지한 얼굴로 그 말을 마치고 최성훈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돌아서서 걸어갔다. 조금 전까지 아빠를 그렇게나 필요로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최성훈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멀어져 가는 작은 그림자를 바라보며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사랑? 대체 사랑이 뭔데? 겨우 다섯 살짜리 아이가 사랑에 대해 뭘 안다는 거지?’ 하지만 아이의 맑은 눈빛과 어린 목소리는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기에 충분했다. 수천억 원짜리 사업도 척척 해내던 최성훈이 처음으로 혼란에 빠졌다. 소윤정을 사랑하지 않는 건 맞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다. ‘사랑? 말도 안 되는 소리. 사랑이 밥을 먹여 주나 돈을 벌어다 주나?’ 짜증이 밀려와 그는 담배를 한 대 꺼내 들고는 입에 물었다. 2층 주방 쪽을 올려다보니 불이 켜져 있었다. 창문에 비친 두 개의 그림자가 보였고 그 그림자 속에는 소윤정의 옷 색깔도 어렴풋이 보였다. 그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차가운 빗속에 몸을 맡기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했다. 소윤정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혼을 이미 결심한 이상, 최성훈과 완전히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것을 소윤정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헤어진 후에 친구로 지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친구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다행히도 소윤정의 물건은 많지 않았다. 처음 최성훈과 결혼했을 때, 그녀는 작은 여행 가방 하나만 들고 왔다. 이제 떠나려는 지금, 여전히 그 가방이 소윤정과 함께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가방에 하나의 보물이 더해졌다. 바로 하준이다. 작은 아이는 엄마가 짐을 싸는 모습을 보며 슬픔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하준은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아빠 없는 아이가 되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두려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하준은 소윤정이 상처받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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