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5장 우리는 부부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호흡이 힘겨워졌다. 손톱이 손바닥 안을 파고들어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아팠다. 내 앞으로 다가온 송여월은 팔짱을 끼고 조롱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네가 더러워서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잖아. 있잖아, 만약 염지훈이 네 5년 전의 과거를 알게 된다면 널 계속 염씨 가문에서 지내게 할까?” 그럴까? 나는 답을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뒤, 나는 모든 감정을 거두었고 눈빛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조금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송여월, 나 지금 너한테 뭐라도 하지 않으면 기분이 아주 안 좋을 것 같아.” 잠시 멈칫한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더니 경계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너… 뭐 하려는 거야?” 옅은 미소를 지은 나는 이내 차갑게 얼굴을 굳히며 소변 검사 창구 쪽으로 다가가 한 남자가 막 내려놓은 계량컵을 들고는 송여월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계량컵 안의 노란 액체를 그녀를 향해 뿌렸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꺄악!” 송여월은 피하지 못해 온 얼굴에 범벅이 되었다. 나는 계량컵을 다시 남자에게 쥐여주며 말했다. “죄송해요, 한 번 더 받아오셔야 할 것 같네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남자는 멍하니 텅 빈 계량컵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 소변….” 기분이 드디어 풀리는 것 같았다. 숨이 내쉰 나는 그대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 예상치도 못하게 로비 입구에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값비싼 수제 양복, 광이 나는 검은 가죽 구두, 냉담한 얼굴의 그는 멀찍이 서 있기만 해도 보고 있으면 고귀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대체… 언제 온 거지? 모른 척은 늦은 듯싶었다. 벌써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길쭉한 인영이 내 앞에 서더니 낮보듯 나를 쳐다봤다.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는 그렇게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뚫어지게 보는 시선에 조금 소름이 돋아 먼저 말을 건넸다. “마음이 아프면 대신 뿌려줘도 돼.” 앞에 있는 사람은 낮게 웃는 듯하더니 내 옷자락을 잡아 들어 내 손을 보며 말했다. “안 더러워?” 자신의 하얀 손가락을 본 나는 고개를 들어 염지훈을 쳐다보며 말했다. “안 닿았어.” 내 말에 염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잘생긴 얼굴에 확연하게 언짢음이 떠올랐다. “가서 손 씻어!”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인포에서 티슈를 부탁해 손을 닦으며 말했다. “송여월 지금 화장실에 있어. 지금쯤 토하고 있겠지. 난 다른 볼일 있어서, 먼저 가볼게.” 하지만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그에게 잡혔다. 가지 못하게 하는 염지훈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고 점차 성질을 드러냈다. “염 대표님, 대신 화풀이해 주고 싶으면 서두르지 그래. 나 다른 볼일 있어.” 잘생긴 미간은 조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당신 아버지 입원 중이잖아. 가서 병문안 가야지.”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니까 같이 아버지 병문안을 가자는 건가? 병실 밖. 들어가면 송정헌과 싸우게 될 게 뻔해 나는 들어가지 않은 채 그저 염지훈만 들여보냈다. 다시 돌아와 병실 밖에 앉아 넋을 놓고 있는 나를 본 엄마는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여은아, 네 아빠 이제 남은 시간 얼마 없어. 그러니까 그만 화 풀어, 응?” 마음이 시큰해진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겉으로는 너한테 화난 척해도, 실은 널 지키지 못한 자기한테 화를 내고 있는 거야. 넌 네 아빠가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면서 키운 애잖아. 네 아빠가 널 얼마나 예뻐했어. 그때 네가 제멋대로 굴다가 그 고생을 하고 경찰이 널 데리고 왔을 때 피골이 상접하고 온몸에 상처인 너를 보고 그토록 강한 사람이 병실 밖에서 애처럼 울었어.”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손톱만 뜯어댔다. 마음속이 시큰해지며 괴로워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크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은아, 네 아빠가 그동안 너한테 엄격하게 군 건 무서워서 그런 거야. 그때 같은 일이 또 벌어질까 봐, 있는 힘을 다해 송한 그룹을 발전시킨 거야. 나중에 우리 부부가 없더라도 너… 랑 여월이가 송한 그룹이 모아둔 재산으로 남은 평생을 잘 지낼 수 있게 말이야. 그러니까 네 아빠한테 그만 화 풀어, 응?” 내 손을 꼭 잡은 엄마의 두 눈에는 무력함과 애절함이 가득했다. 그녀를 본 나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엄마, 만약 당시의 일이 내가 제멋대로 굴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한다면 믿을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정하게 말했다. “넌 엄마 딸이니까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엄마는 다 믿어.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잖니, 우린 앞을 보고 살아야지. 지나간 일은 그만 생각하고, 안 그래?”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럴 줄 알고 있었다 말을 한다고 해도 그때 당시처럼 나를 믿어줄 사람은 없었다. 말자, 나는 엄마를 보며 말했다. “엄마, 걱정마요. 더는 아버지랑 싸우지 않을게요.” 인생은 짧으니 아버지의 남은 여생동안 나는 딸로서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내 말을 듣자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마음이 놓인다는 듯 말했다. “그럼 됐다, 그럼 되었어.” 병실 문이 열리고, 염지훈이 나왔다. 담담한 얼굴의 남자는 엄마가 나를 잡고 환하게 웃는 것을 보자 잠시 멈칫하다 옆에 덤덤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엄마는 나를 놓아주더니 웃으며 말했다. “됐어, 네 아빠는 내가 잘 챙겨줄 테니까 둘은 그만 자기 볼일들 보러 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엄마에게 인사를 한 뒤 염지훈과 병실을 떠났다. 병원을 나올 때까지 송여월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역겨움을 못 참고 돌아간 듯했다. 비록 오늘 염지훈이 병원에 올 줄은 몰랐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염씨 가문은 가정 교육이 훌륭하니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염지훈이 병원에 오는 건 딱히 놀라울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아버지 병문안 와줘서 고마워.” 걸음을 멈춘 나는 그를 쳐다보며 정식적으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 말에 염지훈은 나를 쳐다봤다. 두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나를 쳐다보다 차갑게 말했다. “송여은, 우리는 부부야.”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