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4장 그때 당시의 일

그는 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으로 은근하게 여전히 흉한 흉터를 매만졌다. 한참 후, 시선을 들어 올린 그는 나를 쳐다봤다. 검은 두 눈동자에는 차가움과 담담함만이 가득했다. “왠지 한 번도 나한테 옛날얘기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입술을 꾹 다문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뭐 하러.” 눈을 가늘게 뜬 그는 이내 손을 거두더니 평소의 고귀한 모습으로 돌아가 우아하게 잠옷 가운을 걸쳤다. 침대 옆에 우뚝 선 그는 담담하게 나를 보며 말했다. “일찍 쉬어.” 나는 순간 멈칫했다. 흥미를 잃어 서재에서 자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 나는 끝까지 파고들어 묻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서로 편한 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걸음을 옮기려는 그를 본 나는 이불을 당겨 잠을 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몇 걸음 옮기지 않은 염지훈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송여은.” “응?” 나는 그를 쳐다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여월은 너랑 달라. 괜히 난처하게 만들지 마.” 짧은 마디에는 온통 보호였다. 이불 속에 움츠러들어 있던 몸이 잠시 굳으며 심장도 순간 덜컹했다. 오늘 송여월이 여기서 한 방 먹었다고 지금 이렇게 질책하는 건가? 마음속의 불쾌함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쿵!” 안방의 문이 닫혔다. 이 거대한 방 안에 오직 나 혼자만이 어두운 천장을 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하, 별거 하지도 않았는데 감싸고 도네. 됐다, 잠이나 자야지. 주말. 본가에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회사에서 야근하고 있었다. 전화 너머의 잔뜩 긴장한 목소리를 들은 나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 안, 송정헌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지난번에 내가 만났을 때보다 눈이 더 움푹 파여있어 보고 있으면 전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그런 그의 옆에서 송여월은 부지런히 수발을 들고 있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정헌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굳은 얼굴로 나를 보며 호통을 쳤다. “네가 무슨 낯짝으로 여길 와?” 나는 그의 옆에 있는 송여월을 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엄마를 쳐다봤다. 전자는 깨 고소해하고 있었고 후자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어 나는 송정헌을 보며 말했다. “아버지, 제가 뭐 잘못했어요?” “퍽!” 어디서 성질이 난 건지 송정헌은 곧장 옆에 있는 과일 바구니를 나를 향해 내던지며 두 눈을 부릅떴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송여은, 내가 어쩌다 너같이 창피한 줄도 모르는 것을 낳았을까?” “여보, 여은이가 잘못한 게 있으면 혼만 내면 되지. 애가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엄마는 그가 화를 내는 것을 보자 얼른 내 앞을 막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엄마를 한쪽으로 잡아당겼다. 송정헌의 저런 행동들에 진작에 익숙해진 나는 담담하게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전 정말로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요. 송 대표님, 말씀해 보세요. 적어도 제가 어떻게 창피한 줄을 몰랐는지 알려주시죠.” 내 좋지 못한 태도에 화가 치미는 듯 가슴이 더 크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네가 네 언니와 염지훈을 모함해서 경찰에 신고했냐?” 그 일 때문에? “하하!”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그를 쳐다봤다. “송 대표님, 다음부터는 욕을 하려면 그럴듯한 핑계를 대주세요. 이 핑계는 듣기만 해도 지능이 떨어지는 것 같거든요.” 그를 흘깃 쳐다본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기왕 안 죽었으니 사이좋은 부녀 사이 방해 안 하고 먼저 가볼게요.” 말을 마친 나는 그가 화를 내기 전에 곧장 병실을 나왔다. 황급히 쫓아 나온 엄마는 나를 붙잡으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여은아, 네 아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안 좋은 집안일을 굳이 떠벌릴 필요가 없다는 거지. 네 언니랑 염지훈 일을 염씨 가문에서 듣고는 전화 와서 묻더구나. 다 서로 체면 있는 집안인데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조용히 해결하면 되지 경찰서까지 가서 얼굴 팔 것 없다고 말이야.” 나는 눈썹을 까닥이며 말했다. “그래서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제가 신고 해서예요?”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당연히 네 탓이 아니지. 네 아빠는 체면을 중요시하잖아. 그래서 화내는 거야. 당연히 네 언니도 혼을 냈었어. 너도 말이야, 얌전한 여월이처럼 네 아빠 달래줄 수는 없어?” “좋은 말 듣고 싶으면 송여월한테서 들으라고 해요. 전 일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말을 마친 나는 복도를 따라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끝까지 나를 잡으며 한숨을 쉬었다. “너도 참, 왜 얼굴 보자마자 가려고 해. 네 아빠가 왜 입원했는지는 안 물어봐? 누가 뭐래도 네 친아빠야.” 방금 전 화를 낼 때는 그걸 모르는 듯 잘만 내더니, 나는 엄마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건데요?” “간암 말기야. 의시가 막 확진했어.” 엄마는 말을 마치자마자 눈물을 후드득 떨어트렸다. 엄마의 말에 나는 넋이 나갔다. 조금 정신이 멍했다. “왜… 갑자기….” 엄마는 울먹이며 말했다. “그동안 송한 그룹을 위해서 밤낮없이 일을 한 데다 평소에 술담배도 많이 했잖니. 의사가 그러는데 이제 3개월밖에 남지 않았대. 이건 사형 선고 유예나 다름없잖아. 여은아, 당시 일에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해. 네 아빠 화 좀 가라앉으면 제대로 옆에 있어 주고. 이게 벌써 몇 년째야, 두 사람….” “엄마, 당시의 일에 난 잘못한 거 없어요.” 치미는 감정을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짜증이 일었다. 이어질 엄마의 말들은 전부 전과 똑같은 천편일률적인 말일 것을 알아 나는 곧장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뒤 엄마가 쫓아오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병원 로비에 도착하고 나서야 깊게 숨을 들이켜며 치미는 감정을 누르려 애를 썼다. “송여은, 넌 정말 감정 따위는 없는 괴물이구나.” 등 뒤에서 조롱이 들려왔다. 따라 나온 송여월이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곧장 밖으로 향했다. 다만 송여월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20살에 남자랑 몰래 도망가더니 변경에 팔려 가서 몸 팔게 된 거, 송여은, 네 그런 과거 지훈이는 모르지?”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