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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앞마당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던 오진숙은 딸이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오는 것을 보고 싱긋 웃었다. “선아가 왔나 보구나?” “네, 엄마랑 아빠 옷까지 한가득 사서 왔더라고요. 얼른 입어보세요.” “세상에, 이거 다 비싼 거 아니에요? 백화점 옷인 것 같은데?” 그때 하선아의 외숙모인 정여빈이 다가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거 가격이... 세상에! 뭔 신발 한 켤레가 10만 원씩이나 해? 윤경아, 선아한테 얼른 이거 다 환불해라고 해. 10만 원이면 생활비를 하고도 남아!” 오진숙은 가격표를 보더니 서둘러 손을 휘휘 저었다. “엄마, 선아가 엄마 생각해서 사 온 거니까 그냥 받아요.” 당시 이현숙이 등록금이 비싸다며 하선아가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반대했을 때 그 돈을 마련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오진숙이었다. “선아가 나랑 애 아빠한테는 스마트폰을 사줬어요.” “그거 엄청 비싼 거 아니니?” 오진숙은 딸이 잘살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저도 우리 딸을 시내에 있는 대학교에 보내야겠어요. 그래야 돈도 더 많이 벌죠.” 정여빈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대학교를 나와야 취직도 더 쉬울 거고 미래가 더 창창할 테니까. “엄마, 얼른 입어보세요. 손녀가 사 온 옷인데 그래도 한 번 입어봐야죠.” 오진숙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다가 양윤경이 하도 입어보라고 하자 못 이기는 척 방으로 들어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 서준수와 이정오는 저녁이 될 때까지 줄곧 방에만 있었다. 서준수는 공간 안에 있는 각종 약과 냄새만으로도 사람을 홀리는 통닭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다 도저히 못 참겠던지 결국 통닭을 밖으로 꺼냈다. “저, 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거 맞죠? 이거... 통닭 맞죠?!” 이정오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는 닭이라는 생물을 본지 너무 오래된 터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종말의 시대가 도래한 후 모든 동물이 변이해버렸고 닭이나 돼지나 더 이상 맛있는 식자재가 아닌 녹색 농축액이 전신에 분포된 아주 징그러운 것들이 되어버렸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것들을 보면 구이 같은 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서준수는 통이 크게 이정오에게 절반이나 내어주었다. 두 사람은 허겁지겁 먹는 것이 아닌 아주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날이 밝는 대로 기지로 돌아가자.” 서준수가 말했다. 기지에는 배를 곯고 있는 사람이 허다했다. 아마 그중 몇몇은 오늘도 채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네!” 이정오는 입안에 음식을 한가득 넣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는 향이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이 느낌이 너무나도 좋았다. 예전에 먹었던 것들은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으로 맛 같은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제일 중요한 건 생존이었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배가 너무 고파 독이 들고 다 변이된 채소까지 먹었다. 그중에는 임산부들도 있었고 그 탓에 아이들은 세상 빛도 보지 못하고 죽게 되거나 기형아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거... 맞죠?” 이정오가 음식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돈이 되는 물건만 넣어주면 언제든지 음식들로 교환할 수 있어.” 서준수의 말에 이정오는 눈앞에 있는 깨끗한 물과 통닭을 번갈아 보았다. 한번 맛을 보니 이것들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공간이 작아서 기지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의 대량 교환은 불가능해.” 공간을 업그레이드해야만 음식들을 더 많이 교환할 수 있고 기지에 있는 사람들도 구할 수 있다. “수정구슬을 찾는 건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좀비들을 다 도륙 내 버릴게요!” 이정오가 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치며 맡겨만 달라는 눈빛으로 말했다. 사실 수정구슬이 얻기 힘든 물건은 맞지만 음식에 비교하면 큰 쓸모는 없었다. 아무리 능력이 업그레이드된다고 해도 허기가 지면 그것 또한 아무런 쓸모도 없을 테니까.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음식이었다. “그래.” 서준수가 답했다. 그녀가 업그레이드되면 공간도 따라서 커지게 된다. “음식만 준다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죠.” “돈 되는 물건을 찾아낸 다음 바로 기지로 돌아갈 거야. 거기 있는 사람들도 이제는 거의 한계일 테니까.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대신 수정구슬과 물자를 받는 거지.” 이정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참, 혹시 분유 같은 것도 얻을 수 있습니까? 제 아들이 기지에 있는데 분유를 먹어야 해서요.” “아마 가능할 거야. 그러려면 일단 수정구슬과 돈이 되는 걸 찾아야겠지.” 돈이 되는 것들을 공간에 넣어야 그쪽에서 음식과 깨끗한 물을 넣어준다. 즉 등가교환인 것이다. 하지만 돈이 되는 물건들을 아무리 많이 얻어와도 공간이 작으면 물건들을 넣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일단 그쪽에서 공간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기지에 있는 사람들이 살 수 있으니까. 동이 튼 후 서준수와 이정오는 바로 시내 쪽으로 향했다. 곳곳에 좀비들이 널려있어 아주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일단 가는 길에 보이는 좀비들만 해치웠다. 좀비마다 뇌에 수정구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초능력자로 각성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듯 좀비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뭐가 됐든 수정구슬을 위해서는 좀비들의 뇌를 하나하나 해부해야겠지만. 공간은 지금 하선아가 넣어둔 음식으로 벌써 반이나 차버렸다. 서준수는 주머니에 있는 수정구슬 두 개를 꺼내 공간에 넣었다. 시차가 있어 이쪽은 대낮이지만 하선아가 있는 곳은 저녁이었다. 거리에 있는 편의점이나 마트는 이미 털려버린 지 오래였고 옷가게도 남은 옷이 거의 없었다. 서준수는 공간을 한번 살펴보다 그제야 하선아가 남긴 노트를 발견했다. 노트를 펼쳐보니 단정한 글씨로 소설이나 문예 작품 같은 것이 있으면 뭐든 좋으니 다 보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서점으로 가야겠어.” “네? 서점이요? 금은방이 아니라요? 돈 되는 물건을 찾아야 한다면서요?” 이정오는 지금 돈 되는 물건을 찾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덩이나 돈 같은 건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덩이 취급하던 사람이 말이다. “따라와.” 서준수는 다른 설명 없이 앞장섰다. 이에 이정오도 굳이 다시 묻지 않고 대장의 뒤를 따랐다. 서점으로 가보니 책꽂이에 있는 책들 대부분에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서준수는 그중에서 멀쩡한 책들을 골라 공간에 넣었다. 서점에서 나온 후 두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액세서리 삽으로 들어갔다. 억 소리 나는 것들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값이 나가는 물건들은 있었다. 이것저것 넣다 보니 어느새 공간이 꽉 차게 되었다. “이제 됐어. 이만 기지로 돌아가자.” 일단은 공간에 있는 음식들을 기지 사람들에게 전해줘야 한다. “네!” 다음날. 하선아는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 넣은 음식들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음식들 옆에는 그녀가 부탁했던 책들이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예쁜 액세서리들이 있었다. 금으로 된 건 아니었지만 모양이 신기한 것들도 많았고 일단 매우 예뻤다. 하선아는 공간 안에서 책들을 들고 나왔다. 서준수가 가져온 책은 총 3권으로 된 소설이었는데 1, 2권만 있고 3권은 없었다. 그녀는 컴퓨터를 켜고 제일 유명한 소설 사이트에 들어가 계정 하나를 개설했다. 물론 한 자 한 자 타이핑 하는 건 불가능했다. 글자 수가 워낙 많았으니까. “스캐너를 사야하나?” 하선아는 계정을 개설한 후 다시 컴퓨터를 끄고 서준수가 넣어둔 액세서리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값이 꽤 나갈 것 같은데 사이트에 한 번 올려봐야겠다.” 그때 그녀의 휴대폰에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그녀의 중학교 동창인 안주희였다. [선아야, 나 이번 주에 결혼하는데 와서 내 들러리 좀 서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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