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안주희와는 중학교 때 자주 얘기도 하며 친했기에 하선아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그래!]
사실 그녀는 동창생들의 결혼식에 자주 참석하는 편은 아니었다. 요즘은 훈훈하게 축하하고 축하해준 것에 감사하는 분위기가 아닌 자신의 직장이나 남자친구를 뽐내는 것에 열을 내고 있었으니까.
하선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은 후 공간에서 수정구슬을 꺼내 터트린 다음 흡수하기 시작했다.
총 7개가 되는 수정구슬을 그녀는 한꺼번에 다 흡수해버렸다.
처음에는 이 특유의 냄새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습관이 돼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다 흡수하고 나니 어쩐지 눈앞이 핑 도는 느낌이 돌며 모든 것들이 모호하게 보였다.
서둘러 안경을 벗어 던지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안경이 없어도 아주 작은 글씨들이 전부 다 보였다.
“앞이 제대로 보여! 하하하! 안경이 없어도 다 보인다고!”
수정구슬이 근시까지 치료해줄 줄은 몰랐다.
그녀는 지긋지긋한 안경을 벗을 수 있게 되자 수정구슬이 좀비 머리에서 나온 물건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치 억대의 다이아몬드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눈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가볍고 에너지가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체력이라면 농사일도 아주 손쉽게 끝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한 공간도 확실히 전보다 몇 평은 더 커졌다. 수정구슬을 흡수하면 공간도 업그레이드된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하선아는 가벼운 몸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다 다시 액세서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결혼식에 초대한 안주희에게 줄 핑크색 목걸이를 하나 고르고 나머지는 다시 큰 상자 안에 담았다.
하정욱은 아침 댓바람부터 밭으로 나갔고 양윤경은 장 보러 갔다. 그리고 이현숙은 마당에서 햇볕 쪼임이나 하다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동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다.
하선아의 집과 그녀의 큰아버지네 집은 한 달에 한 번씩 이현숙을 돌보고 있다.
하선아는 아침을 먹은 후 스쿠터를 타고 밭으로 향했다. 가는 길 그녀는 이웃집 어르신과 만나게 되어 잠시 멈춰 섰다.
“선아 너는 왜 다시 돌아온 거니?”
요즘 젊은이들은 다들 시골에서 나가 도시에서 정착하려고 했기에 하선아의 선택은 꽤 의아한 선택이었다.
“엄마랑 아빠랑 같이 밭일하려고 사직서 냈어요.”
그녀의 말에 어르신은 깜짝 놀라더니 이내 혀를 끌끌 찼다.
“선아야, 밭일이라는 건 쉬운 게 아니야. 대학교도 졸업한 애가 뭐 한다고 여기로 다시 돌아와?”
“저 어릴 때부터 엄마랑 아빠 따라 밭일 많이 해봤어요.”
하선아가 말했다.
“네가 일을 하면 얼마나 했다고. 밭일하려면 기본적으로 체력이 있어야 해. 그런데 네 팔뚝을 봐.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팔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데? 내 등에 있는 이 물건들 보여? 20킬로는 족히 되는 것을 네가 어떻게 들어? 게다가 봄은 그래도 괜찮지만 여름이 되면 덥고 벌레도 많아.”
어르신의 말에 하선아는 금과 액세서리들을 돈으로 바꾼 후 수월한 밭일을 위해 일단 기계부터 사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마을 사람들도 기계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다만 기곗값이 워낙 비싸 그걸 사게 되면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어르신은 괜찮다며 알아서 하겠다는 하선아의 단호한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갈 길을 갔다.
하선아가 밭에 도착해보니 땀으로 옷이 흠뻑 젖은 채 무거운 약통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하정욱의 모습이 보였다.
하정욱은 구부정하게 굽은 허리를 잠깐 펴며 쉬다가 하선아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말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얼른 집으로 돌아가!”
“아빠, 저 밭일하겠다고 한 거 진심이에요. 그리고 아빠랑 엄마가 힘들게 가꾼 이 채소들, 제가 팔아드릴게요.”
그녀가 이곳으로 온 건 채소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도 있었다.
“판다고? 네가 정말 이것들을 팔 수 있어?”
하정욱은 그 말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지금은 채솟값도 그렇고 과일값과 그렇고 대폭 하락해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싼값에 팔 수밖에 없었다.
값이 하락한 데는 비닐하우스의 등장에 있었다. 비닐하우스가 있으면 철이 아닌 과일과 채소들도 수월하게 재배할 수 있으니까.
또한 요즘은 채소와 과일에 대한 요구도 높아 사람들의 니즈를 만족시키려면 씨앗도 비싼 것을 사들여 심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작은 마을에서 비싼 씨앗을 사들여 심으려는 사람은 통 없었다. 제대로 키울 수 있느냐의 문제도 있고 잘 키운다고 한들 팔리지 않으면 더 큰 손해를 입게 되니까.
“당연하죠. 그것 때문에 돌아온 건데요. 저한테 큰손 고객이 있어서 파는 데는 문제 없어요.”
‘준수 씨한테 음식을 주는 대가로 돈이 되는 것들을 얻고 있으니 큰손 고객은 맞지.’
하정욱은 스마트폰에 각종 비싼 옷들까지 사 들고 온 딸의 모습이 생각나 어쩌면 정말 믿고 맡겨도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너무 좋지. 안 그래도 이것들을 다 팔 수 있을까 엄청 고민을 많이 했거든.”
“우리 집 채소들은 하나같이 상태가 좋네요.”
하선아가 조금 있으면 맛있게 익게 될 토마토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이제 그만 쉬어요. 제가 대신 약 칠게요.”
“안 돼. 이게 얼마나 무거운데!”
하정욱이 걱정하며 말리려는데 하선아가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약통을 번쩍 들었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힘이 부족해 힘들었겠지만 수정구슬을 흡수한 지금은 이런 것쯤은 가볍게 들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하선아는 약통을 등에 인 채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리저리 약을 쳐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정욱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괜히 속상해졌다. 그와 양윤경 사이에 자식이라고는 애지중지하게 키운 하선아 한 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릴 때 밭일을 도와주겠다는 딸의 기특한 말에도 가장 쉬운 일만 하게 해줬다.
그리고 그녀를 대학교에 보내고는 자신들은 괜찮다며 매달 그녀에게 10만 원이라는 생활비를 보냈다.
채소와 과일을 판 값의 5배나 되는 돈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딸이 고생하는 것이 싫어 망설임 없이 돈을 보냈다.
물론 그렇다고 하선아가 편히 생활한 건 아니었다. 10만 원이라는 돈은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기에 매번 전화를 걸면 하선아는 늘 야근이 아니면 지하철이었다.
‘그래, 선아도 밖에서 고생을 많이 했겠지. 밭일이 힘들기는 해도 심적으로는 덜 힘들지도 몰라.’
하정욱은 생각을 마치고 다시 하선아를 바라보았다.
조금 쉬고 하라는 말을 건네려던 참이었는데 하선아는 힘들지도 않은 건지 그 무거운 걸 등에 인 채로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끝내버렸다.
하선아는 한 바퀴를 다 돌았는데도 거뜬한 자신의 몸을 보며 이건 분명히 수정구슬을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만약 이 일을 하정욱이 했으면 아마 중간에 몇 번이나 휴식 타임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하선아는 한꺼번에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뿐만이 아니라 거친 숨 한번 내쉬지 않았다.
하정욱은 일을 다 끝낸 채 활짝 웃고 있는 딸과 자신의 거친 양손을 번갈아 바라보며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1시간이나 더 돼야 끝날 일이 하선아 덕에 20분도 안 돼 다 끝이 나 버렸다.
‘내가 늙은 건가...? 하지만 난 아직 50대도 안 됐는데?’
하선아는 신선한 채소들을 보며 싱긋 웃더니 곧바로 하정욱에게 백만 원을 송금했다.
“아빠, 제가 방금 송금했으니까 다른 곳에 팔지 말고 이것들 다 저한테 주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