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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방성훈은 통증에 얼굴이 일그러진 채 목소리를 떨며 물었다. “너희 이혼한 거 아니었어?” “누가 그래? 우리가 이혼했다고?” 박진호는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 “방성훈, 앞으로 내 딸이랑 아내 근처에 얼씬거리지 마. 안 그러면 너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어 줄 수도 있어.” 그렇게 경고를 내뱉은 뒤, 그는 무심결에 심민아 쪽을 흘끗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그가 방성훈을 위협하기만 해도 그녀가 곧장 달려들어 뺨을 후려치며 외쳤을 것이다. “성훈이한테 손끝 하나라도 대면 가만 안 둬!” 하지만 이번에는 기대했던 격렬한 반응이 전혀 없었다. 심민아는 고요했다. 꼭 아름다운 조각상처럼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박진호는 경안시 최고 재벌가인 박진 그룹의 주인이자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정말 마음먹고 방성훈을 처단하려 든다면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런데도 왜 이토록 오래 참아 왔을까? ‘설마 나 때문에...?’ “서현이는 성훈이 핏줄이야. 네가 어떻게 그냥 모른 척해!” 강소라는 떠나려는 심민아를 가로막으며 뻔뻔하게 따졌다. 심민아는 우스워 죽겠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 인간 핏줄이든 뭐든 내 알 바야? 내가 그놈 아비도 아닌데, 왜 후사를 책임져 줘야 하지?” 그녀가 생각난 듯 제안했다. “그래, 이렇게 하자. 너희 둘이 무릎 꿇고 나한테 아버지라고 부르면, 내가 시험관 전문의라도 소개해 줄 수 있지. 핏줄 하나 더 만들어 보라고. 근데...” 조롱 섞인 시선이 방성훈에게 닿았다. “너 제대로 못 하지 않아? 몸도 허하고 콩팥도 허해서 정자 수가 바닥일 텐데. 그런 상태로 무슨 핏줄을 이어 가겠어.” 방성훈은 분노로 당장 피를 토할 것처럼 보였다. 남자에게 이보다 더 자존심을 세게 후려치는 모욕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강소라와 아들을 낳아 대를 잇고 싶어 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네가 감히 날 저주해?” 그는 몰랐다. 심민아는 몸만 잘 쓸 뿐만 아니라 의술도 뛰어나다는 것을 말이다. 옆에서 강소라는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눈치였다. 한편, 상황을 지켜보던 어른 한 명과 아이 두 명은 입을 다물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 민아가 지금 방성훈이랑 말싸움을 한다고?’ ... 롤스로이스 안.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박진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해하지 마. 내가 그렇게 말한 건 박씨 가문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야. 우리는 아직 이혼 안 했고, 넌 내 아내로 되어 있으니까.” 심민아는 순간 서운해졌다. ‘그렇구나, 결국 가문의 체면 때문이었어...’ 그가 그녀를 박씨 가문의 안주인이라고 할 때는 괜스레 마음이 두근댔었다. 사실 그녀가 처음 마음을 빼앗긴 건 학창 시절이었다. 다이어트를 하느라 저혈당에 시달리다 체육 시간에 기절했는데, 창가에 앉아 있던 박진호가 모든 걸 내팽개치고 창문으로 뛰어 내려와서는 그녀를 들쳐 안고 보건실까지 달려가 줬다. 그때부터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거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찰나 박진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혼합의서에 사인하면 한 비서한테 넘겨. 수속은 한 비서가 너랑 조율할 거야.” 한동욱은 박진호의 비서였다. 심민아는 조금 실망했다. ‘이렇게 완벽한 남자가 결국 나를 떠나게 되는 건가...’ 차가 박씨 저택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의사들이 바삐 박수연의 방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두 시간 뒤, 정신을 잃었던 박수연이 깨어났다. “수연아, 어디 불편한 데 없어?” 박진호가 침대 곁에서 다정하게 물었다. 하지만 박수연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며 아무 말도 없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심민아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작은 아이는 그제야 눈을 깜박이며 반응을 보였다. “엄마, 수연이 여기 있어.” 박지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곧장 주치의를 노려봤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주치의가 몇 가지 검사를 한 뒤 말했다. “몸에는 큰 이상이 없는데,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심리적 문제요?” 박진호가 물었다. 주치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자폐증입니다.” 심민아는 그 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착하고 이해심 많은 박수연이 왜 그런 병에 걸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치의가 덧붙여 설명했다. “이런 심리적 질환은 대개 가정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보통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가 이렇게 심리적 문제를 겪기 쉬워요. 만약 방치하면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벼우면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고, 심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어요.” 박진호는 숨이 턱 막힌 듯했고 죄책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내가 내 딸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구나.’ 주치의는 모두를 안심시키려는 듯 덧붙였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아직 초기 증상이라 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그는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박진호를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대표님, 이혼은 미루시는 게 좋겠어요. 아가씨가 이 문제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억지로 이혼을 강행한다면 병이 더 악화될지도 몰라요.” 방 밖에서. 박진호는 심민아와 얘기를 좀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심민아가 먼저 말했다. “네가 나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고, 당장 이혼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알아. 그렇지만 수연이를 위해서 지금 당장은 안 돼.” 박진호는 잠깐 멈칫하며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혼 안 하겠다는 거야? “응. 수연이 병이 나으면, 그때 가서...” “알았어.” 그녀가 말을 끝까지 하기도 전에, 박진호가 먼저 잘랐다. 그는 돌아서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민아가 정말 달라지기는 했구나.’ 그 광경을 문틈 사이에서 몰래 엿보던 조그만 그림자가 있었다. 살금살금 문을 닫은 박수연은 침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아동용 손목시계를 꺼냈다. 그리고 전화를 걸며 속삭였다. “미정 이모! 아빠, 엄마 결혼 지키기 작전 대성공이야! 엄마랑 아빠, 당분간 이혼 안 하기로 했어!” 이혼을 막기 위해 박수연은 임미정과 함께 전략을 짰다. 그녀는 아픈 척 연기를 하고, 임미정은 박씨 집안 주치의를 매수해 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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