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4화
여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하준은 점점 가슴이 아파왔다.
새삼 추동현의 악랄함에 치가 떨렸다.
‘아마 내가 동성으로 갔을 때부터 날 목표로 삼아 하나하나 계획을 실행했겠지.’
추동현은 양유진의 야심까지 간파해 그 야심마저 이용했다. 두 사람 다 속을 철저히 감춘 음흉한 인간이었기에 여름도 하준도 속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내가 그때 당신을 조금이라도 믿었더라면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 텐데.”
“아니, 그래도 벌어질 일은 벌어졌을 거야. 백지안이 나타났을 테니까.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사촌 동생에게도 저렇게 신경을 쓰는데 진짜 백지안이 나타나면 어떨까 하고. 결국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고 난 경쟁에서 완전히 참패했지.”
여름이 무기력하게 말했다.
“백지안이 최면을 쓰기 전, 날 파티에 데려갔을 때, 친구들이 그렇게 날 왕따시키고 모욕주었는데도 당신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어. 다들 무조건 백지안만 떠받들면서 날 받아들여 주지 않았지. 우리 사이에 애정이 식고 믿음을 잃어갈 무렵 아이가 생겼고, 내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하준의 얼굴에 괴로움이 역력했다. 백지안의 기억 조작으로 여름이 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주혁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그 말이 맞네요. 그때 소영이한테도 여름 씨한테도 편견이 있었어요. 전부 사과할게요.”
여름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난 그래도 살아있으니 사과를 받을 수도 있지만, 죽은 사람은요? 불쌍한 소영인 억울함을 풀지도 못했고 부모님까지 돌아가셨어요. 어머님 유골마저 개와 바꿔치기 되었고요.”
“……”
이주혁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소영의 맑고 예쁜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났다.
여름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알아요? 소영이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전에 사이가 좋았을 때도 백지안이 소영이를 괴롭힌 건데도 백지안이 울기만 하면 당신들은 소영이가 백지안을 괴롭혔다고 생각했대요. 아마 당신들 눈에 백지안은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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