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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나를 직장에서 잘리게 만든 장본인께서 내게 사과 받기를 기대한다고? 정말 정신 나간 거 아니야?’ “도하 씨,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왜 사과를 해야 하는 거냐고요? 지난 3년 동안 당신이 집에 돌아온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이런 무의미한 결혼 생활을 견딜 수 없어서 이혼을 선택한 게 제 잘못인가요?” 이서현은 허탈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도하 씨의 바람을 묵인하고 평생 불행하게 당신의 아내로 남아야 한다는 건가요?” 김도하는 이서현의 말을 듣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게 이혼 이유였던 거야?” 이서현은 김도하의 뻔뻔한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러면 뭐겠어요?” ‘임태연이랑 1년이나 바람을 피운 걸 알게 됐는데, 이혼을 안 하고 참으라고? 너 같은 남편을 남겨뒀다 어디다 쓰라고! 이 쓸모없는 인간아!’ 어찌 된 일인지, 발끈하는 이서현의 말투에 김도하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이서현, 사실 나와 임태연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어.” 김도하가 웃으며 변명했다. 그 말을 들은 이서현은 과거에 김도하를 좋아했던 것마저 후회하기 시작했다. “김도하 씨, 당신과 임태연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요? 그런데 왜 함께 병원에서 난임 치료를 받고 있었죠? 그 말을 내가 믿을 거로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세 살짜리 어린아이로 보여요? 그런 헛소리를 믿으라고요?” 이서현은 오늘 김도하가 얼마나 뻔뻔한 사람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정말 한심하네요.” 김도하는 이서현이 자신의 변명을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조롱하자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이서현, 나를 못 믿겠다는 거야?” ‘그런 소리를 믿으라고? 웃기는 녀석이네.’ 이서현은 무심하게 눈을 굴리며 말했다. “김도하 씨, 제발 이혼 서류에 사인하세요.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잖아요. 지금 임태연 씨는 아무런 명분도 없이 당신 곁에 있잖아요.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도하 씨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그녀를 위해서라도 사인해 줘요. 솔직히 저도 이제는 잘못을 깨달았어요. 도하 씨가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결혼한 벌을 받게 됐나 봐요. 저의 큰 실수였어요. 이제 그 실수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거니까 협조 좀 해주세요.” 말을 마친 이서현은 속이 한결 후련해졌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도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말... 무슨 뜻이야?” ‘무슨 잘못을 깨달았다는 거지?’ 이서현은 입술을 깨물며 침착하게 말했다. “더 이상 도하 씨를 사랑하지 않아요. 할아버지의 강요로 억지로 도하 씨와 결혼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미안해요.” 그 말을 듣자마자 김도하는 분노에 가득 차 외쳤다. “이서현, 네 마음대로 결혼을 결정하고 이제 와서 네 마음대로 이혼하겠다는 거야? 내가 만만해? 절대로 네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 이서현이 반박하려 했지만, 김도하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는 김도하의 번호를 차단한 뒤 고개를 저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나랑 결혼한 뒤로 집에도 잘 안 들어오더니, 이혼해 준다고 해도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해?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이서현이 전화를 끊자, 안윤아가 졸린 눈으로 하품하며 일어났다. “서현아, 도대체 그 정신병자를 왜 좋아했던 거야? 이제 막 7시 반인데, 아침부터 전화 걸어대는 걸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너 직장도 잃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안윤아는 한 번 깨어나면 다시 잠들기 힘들어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어차피 잠에서 깼으니 씻고 나와서는 마스크팩을 붙인 채로 이서현에게 물었다. 이서현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모습을 본 안윤아는 좋은 제안을 했다. “서현아, 우리 아빠 회사에서 일하는 건 어때? 너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는 생명공학과 제약 쪽이잖아. 지금 실험실에서 신약을 개발 중인데 인력이 부족해. 너 한 번 지원해 볼래?” 안윤아는 이서현이 대학 시절 학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서현은 이론에서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실습에서도 탁월했다. 이서현은 대학교 2학년 때 교수들과 함께 독극물을 분석하고 해독제를 개발한 적도 있었고, 이 사건 이후로 학교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학교 측에서는 이서현에게 졸업 후 교수로 남아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으나, 그녀는 의외로 병원에 가서 평범한 의사로 일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결정에 의문을 품었다. 안윤아는 이서현의 팔짱을 끼고는 애교를 부렸다. “서현아, 제발 나랑 같이 일하자. 응? 그러면 우리 매일 출퇴근도 같이할 수 있잖아.” 이서현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윤아야, 생각해 볼게. 지금 당장은 결정하기가 힘들어.” 사실 이서현은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약을 만드는 데 더 재능이 있었다. 그녀의 교수도 그녀가 제약 분야에서 아주 큰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었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때 독극물을 연구하던 중, 그녀의 몸에 이상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 국내에는 그녀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나 자료가 없었기에, 그녀는 실험실로 돌아가는 것을 꺼렸다.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윤아는 이서현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말했다. “서현아, 천천히 생각해 봐. 결정되면 알려줘.” 이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 오랜만에 만났기에 안윤아는 이서현에게 쇼핑을 하자고 제안했다. 안윤아는 차를 몰고 경성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갔고, 거기에 도착해서야 차를 주차했다. 이서현은 천천히 차에서 내려 4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거리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참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듯한 허탈한 느낌을 받았다. 김도하와 함께했던 3년 동안, 이서현은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그는 김도하의 돈을 거의 쓰지 않았고 매일 집과 병원만 오가며 살았다. 그래서 이곳을 거의 찾지 않았다. 안윤아는 주차를 마치고 이서현이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녀의 손을 잡고 자주 가는 명품 브랜드 가게로 향했다. “서현아,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빨리 가자!” 이서현은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재촉해 안윤아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고급 브랜드 매장 앞에 도착했다. 매장 입구와 주위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사람들이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서현과 안윤아는 호기심에 그쪽으로 다가가 상황을 살펴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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