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김도하는 순간 멍해졌고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의심했다.
“서 비서, 방금 뭐라고 했어?”
‘이서현이 태연이의 주치의라고? 이게 말이 돼?’
서강준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방금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대표님, 현재 임태연 씨의 주치의는 사모님입니다.”
김도하가 믿지 않을까 봐 서강준은 다시 덧붙였다.
“임태연 씨의 이전 주치의가 다리 부상으로 앞으로 몇 달간 자리를 비우게 됐습니다. 사모님은 그 주치의와 같은 과에 계셨고, 병원에서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병가를 낸 주치의의 환자들을 사모님께 배정한 겁니다. 그래서 임태연 씨의 주치의는 사모님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김도하는 입술을 꽉 물고,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여전히 이 상황을 믿지 못했다.
“서현이가 의사였다고?”
김도하의 의심 가득한 목소리를 듣고 서강준은 당혹스러움을 감추며 대답했다.
“네. 대표님, 사모님은 유능한 의사이십니다. 게다가 사모님은 경신 의대에서 4년 연속 국가 장학금을 받은 최우수 졸업생이었습니다.”
김도하는 계속해서 물었다.
“서현이가 이 병원에 근무한 지는 얼마나 됐지?”
서강준은 바로 대답했다.
“3년 되었습니다.”
김도하는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고 더 이상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없었다.
‘결국 난 이서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네. 서현이의 직업조차도...’
“그래. 알겠어. 바쁘니까 이만 끊을게.”
김도하는 그렇게 말한 후 전화를 끊고 거실로 향했다.
...
임태연은 마지막 요리를 식탁에 올리면서 김도하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서둘러 허리에 묶었던 앞치마를 벗으며 김도하를 반갑게 맞았다.
“도하 씨, 요리가 막 완성됐어. 내 솜씨가 어떤지 평가 좀 해줘.”
임태연은 앞치마를 현관 옆 옷걸이에 걸며 말했다. 평소에 요리를 하지 않아서인지 앞치마는 깨끗한 상태였다.
김도하는 주방에서 손을 씻고 나와 소파에 앉았다.
임태연은 자연스럽게 그의 맞은편에 앉아 김도하에게 수저를 건넸다.
“도하 씨, 빨리 먹어봐.”
김도하는 수저를 건네받고 나서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았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왜냐하면 음식의 모양새가 하나같이 이서현이 만든 것보다 훨씬 볼품없었기 때문이었다.
김도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임태연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닭고기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임태연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닭고기는 약간 퍽퍽했고, 간이 부족해서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서현이 만든 것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김도하는 어렵게 닭고기를 삼키고는 그럴듯하게 말했다.
“괜찮네.”
김도하의 칭찬에 임태연은 기뻐하며 말했다.
“도하 씨, 앞으로 자주 해줄게.”
그 말을 한 후, 임태연도 수저를 들고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김도하는 그릇에 토마토 스튜를 담으며 무심하게 물었다.
“아까 요리하고 있을 때, 내가 서 비서에게 주치의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어. 근데 주치의가 이서현이라던데? 그래서 이참에 주치의를 바꿀지 생각 중인데, 네 생각은 어때?”
그 말이 떨어지자, 임태연은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놓쳐 테이블 위로 떨어뜨렸다. 그녀는 젓가락을 주워 들며 당황한 얼굴로 김도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내 주치의가... 서현 씨라고? 아무리 그래도 서현 씨는 도하 씨의 아내인데, 치료가 안 된다고 해서 주치의를 바꾸는 건 좀 지나치지 않을까?”
임태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도하는 임태연의 반응을 눈여겨보며 대답했다.
“네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걸 보면 실력이 없는 거겠지. 그런 무능한 의사는 진작에 교체했어야 했어. 그런데 왜 처음부터 이 병원에서 치료받으려고 했어? 경성에는 더 유명한 병원들이 많잖아.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았으면 진작에 나았을지도 몰라.”
임태연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어색한 표정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대학 다닐 때, 교수님이나 친구들 모두 이 병원에서 치료받곤 했었어. 그래서 이 병원이 괜찮을 거로 생각했어.”
임태연은 질문에 대답하면서 김도하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김도하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중 몇몇 사람들은 실력이 없나 봐. 내일 서 비서에게 말해서 주치의를 바꾸라고 할게. 이서현은 의사 자격이 없으니, 병원에서 내쫓도록 할 거야.”
김도하의 말을 듣고 임태연은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이서현을 위해 해명하는 척했다.
“도하 씨, 그럴 필요까지야 있을까. 서현 씨가 실력이 부족하다 해도 그동안의 노력으로 이 병원에 입사한 건 사실일 거잖아. 요즘 일자리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렇게 해고하는 건 너무 가혹해. 난 주치의를 바꾸는 거로 충분해.”
하지만 김도하는 이미 마음을 굳혔고, 이번 기회에 이서현에게 경고하고 싶었다.
“태연아, 이서현 같은 의사를 위해 변명할 필요 없어. 이미 결정한 일이야. 아무도 말릴 수 없어.”
임태연은 어쩔 수 없이 나머지 말을 삼켰다.
식사 후, 김도하는 임태연과 함께 설거지를 도운 뒤 회사에 처리할 일이 있다며 한스 아파트를 떠났다.
임태연은 기분이 좋아서 김도하를 붙잡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이서현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해고’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눈이 번쩍 뜨였고 잠이 확 달아났다.
이서현은 해고 이유를 물었지만, 상대방은 애매한 핑계를 대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분노에 찬 이서현은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졌고, 잠시 후 핸드폰이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낯선 번호를 보고 병원에서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았을까 싶어 급히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그 남자’의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서현, 어때? 잘못을 깨달았어? 오늘 당장 집으로 돌아오면 모든 걸 없던 일로 해줄게.”
김도하의 말을 듣고, 이서현은 단번에 자신이 왜 해고됐는지 알아챘다.
그녀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김도하 씨, 정말 제정신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