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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하... 김도하가 남아서 잔소리를 해댈 줄 알았는데, 역시 내가 쓸데없는 기대를 했나 보네. 임태연에 비하면 나는 그저 무의미한 존재일 뿐인데...’ 이서현은 눈을 살짝 감으며 실망을 감추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고는 온지성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지성 씨, 저희 둘 다 여자라서 이 시간에 집에 가는 게 안전할지 걱정이 되던 참이었어요. 귀찮으시겠지만 집에 좀 데려다주세요.” 이 말을 듣자, 안윤아와 온지성은 순간적으로 놀란 듯 멍해졌다. 누가 봐도 김도하가 떠난 후 이서현은 한동안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듯 멍하니 있었고, 이는 김도하가 여전히 그녀에게 중요한 존재임을 반증했다. 김도하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직도 이서현을 흔들고 있었다. 안윤아는 이서현이 김도하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서현이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걸 누구보다 더 바랐지만, 그 상대가 온지성이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온지성은 여자를 계절마다 바뀌는 옷처럼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전 여자 친구들을 줄 세우면 경성을 한 바퀴 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만약 이서현이 그와 사귀게 된다면 진지한 관계로 발전할 리가 없었다. “서현아...” 안윤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서현의 손을 살짝 잡아당겼다. 이서현은 고개를 돌려 안윤아를 향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윤아야.” 그 말을 마친 후, 이서현은 온지성과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가요. 지성 씨!” 온지성은 그제야 놀란 표정을 거두며 말했다. “두 분을 모시는 건 제 영광이죠. 바로 클럽 입구에 주차해 두었으니, 저를 따라오세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온지성은 두 발짝 앞으로 걸어나가 두 사람을 헌터바 밖으로 안내했다. 친구의 아내에게까지 찝쩍대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김도하는 애초에 이서현에게 관심이 없었고, 이제 두 사람은 이혼할 것이니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어 보였다. 온지성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이서현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애를 썼다. ... 온지성의 차는 고급스러운 검은색 포르쉐였다. 그는 매우 신사적으로 차 옆에 서서 이서현과 안윤아에게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이 차에 탄 뒤에야 반대쪽으로 돌아가 차에 올랐다. 차 안에는 짙은 우드 향 향수의 강렬한 향이 가득했다. 이서현은 냄새에 민감한 편이었기에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흔들며 환기했다. 그녀는 이렇게 강력한 우드 향은 좋아하지 않았다. 온지성은 빠르게 눈치채고는 이서현 옆의 창문을 내리며 환기했다. “이 향이 마음에 안 드시나 보네요?” 온지성은 살짝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는 김도하의 차에서도 같은 향수가 뿌려져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서현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제가 냄새에 좀 예민해서요. 향이 너무 강하면 좀 자극적으로 느껴져서요. 그래서 좋아하지 않아요.” 온지성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천천히 차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도하한테서 이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어요. 제 불찰입니다. 죄송해요.”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안윤아에게 그녀들이 사는 곳을 물어본 후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고 그곳으로 달렸다. ... 한편, 한스 아파트. 김도하가 도착했을 때, 임태연은 거실에서 목도리를 뜨고 있었다. 인기척이 들리고 나서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지자, 임태연은 손에 들고 있던 실타래를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며 기쁜 표정으로 김도하를 맞이했다. “도하 씨, 드디어 왔네?” 김도하는 차가운 눈빛으로 임태연을 훑어보며 무심하게 물었다. “아까 전화에서 몸이 안 좋다고 하지 않았어?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데?” 그의 냉담한 목소리에 임태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머뭇거렸다. “도하 씨, 괜찮아... 아마도 점심으로 먹었던 음식이 상했었나 봐. 속이 메스꺼웠어.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졌어. 처음엔 혹시 임신한 건가 해서 서둘러 도하 씨한테 연락했어... 이번에도 내가 착각한 거였더라고... 괜히 소란을 피워서 미안해.” 임태연은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고, 눈가가 붉어지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김도하의 얼굴에 잠시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쳤다. “괜찮다면 다행이야. 만약 지금 상주하고 있는 요리사의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는 거라면 내일 서 비서에게 다른 요리사를 구하라고 얘기할게.” 그는 이어 물었다. “오늘 오전에 받은 검사는 결과가 어떻게 나왔어?” 그 말을 들은 임태연은 한순간 풀이 죽은 듯 기운이 빠졌다. “의사 말로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대. 언제쯤 나아질지 모르겠네... 다 내 잘못이야. 예전에 일에만 너무 몰두해서 건강을 챙기지 못했어...” 임태연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김도하는 임태연 옆에 앉아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1년 넘게 그 병원에서 치료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으면, 주치의가 실력이 없는 걸 거야. 네 잘못이 아니야. 서 비서에게 그 병원에 연락해서 담당 의사를 바꾸라고 할게. 아니면 병원을 바꾸는 것도 방법이야. 어쨌든 병은 고칠 수 있을 거야.” 김도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의 말은 임태연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임태연은 감격한 듯 김도하를 끌어안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김도하는 잠시 몸이 굳었지만, 이내 천천히 팔을 들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이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뭘...” 임태연은 한동안 김도하를 꼭 안고 있다가 마지못해 그를 놓아주었다.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도하 씨, 이렇게 늦었는데 저녁도 안 드셨죠?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얼른 해드릴게요.” 김도하의 말이 끝나자, 임태연은 말릴 틈도 없이 부엌으로 달려갔다. 김도하는 그저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옮겨 베란다로 나갔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손에 들고 서강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전화는 몇 초 안 되어 바로 연결되었다.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서강준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공손히 물었다. 김도하는 깊은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서 비서, 태연이가 다니는 병원의 주치의를 좀 조사해 줘. 제대로 된 의사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만약 실력이 없다면 아예 다른 의사로 바꿔야겠어. 병을 고치지도 못하면서 1년이나 치료를 했다는 건 실력이 별로라는 뜻이겠지.” 서강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주저하며 말했다. “대표님... 사모님, 그러니까 이서현 선생님이 바로 임태연 씨의 주치의입니다. 정말 교체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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