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옆에 있던 남자는 김도하의 말을 듣고 오히려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김도하는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저 여자는 계획적으로 남자를 홀리고 침대로 기어들어 가는 재주가 있어.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것도 능숙하지. 그런 여자라도 감당할 수 있겠어?”
하지만 김도하의 일행은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말했다.
“그런 건 문제없어. 내 침대로 기어들어 온다면 나야 고맙지. 결국 돈을 바라는 거겠지? 나한테 남아도는 게 돈이니까 적당히 쥐여주면 그만이야.”
김도하의 눈에는 미묘한 불쾌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다시 한번 차갑게 경고했다.
“임자가 있는 몸이야.”
남자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래서 뭐? 골키퍼가 있으면 골이 못 들어가나? 어쩌면... 운명의 상대는 나일 수도 있잖아.”
그의 말이 끝나자, 김도하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는 곧장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아래층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김도하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
음악이 끝나자, 이서현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손으로 대충 닦아냈다. 그녀의 입가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춤을 춘 탓에 체력이 예전만큼 버텨주지는 못했지만, 정말 즐겁게 춤을 추었다.
이서현은 원래부터 차가운 도시 여자에게 가까운 외모를 소유했던 터라 오늘 섹시한 의상까지 차려입으니, 그녀의 움직임은 더욱 눈길을 끌었다.
땀을 닦는 모습조차 주변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휘파람 소리와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김도하는 마침 스테이지로 내려오며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이마를 잔뜩 찌푸리며 뒤에 있는 남자에게 손짓했다.
“사람들 다 내보내.”
그러고는 덧붙였다.
“무대 중앙에 있는 두 여자 남겨둬.”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김도하를 바라보았다.
“뭐야? 너도 쟤한테 관심 있던 거였어? 내가 먼저 점찍었어. 선착순이라는 게 있잖아! 더군다나, 넌 임태연을 두고 한눈팔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너답지 않게 갑자기 왜 이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김도하의 뜻대로 직원들에게 지시해 클럽 안의 손님들을 나가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넓은 클럽에 이서현과 안윤아 단둘만 남게 되었다.
김도하는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이서현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옷차림을 불쾌하게 훑어보았다.
“이서현, 누가 너한테 이런 옷을 입으라고 했어? 김씨 가문에서 배운 예의와 매너까지 다 집에 두고 나온 거야? 아니면 이렇게 입고 또 누굴 유혹하려는 거야?”
아까 수많은 사람이 그녀의 옷차림을 봤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김도하는 당장이라도 이서현을 끌고 나가서 혼내고 싶었다.
이서현은 사람들이 모두 떠난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김도하를 보자마자 그 이유를 금세 알아차렸다.
이서현이 반박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안윤아가 먼저 따졌다.
“이게 다 무슨 소리지?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했어요. 지금은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시대라고요! 조선시대에서 오셨어요?”
안윤아의 말을 듣고 김도하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듯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김도하의 카리스마와 포스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꼬박꼬박 따져 묻는 여자를 보기란 정말 드물었다.
그 남자는 궁금한 듯 안윤아 쪽으로 다가갔고 두 사람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순간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잔뜩 당황했다.
안윤아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성 씨, 오랜만이에요. 설마 이 무례한 남자랑 아는 사이예요?”
온지성은 경성 최고의 재벌가 중 하나인 온씨 가문의 후계자이자, 휴스턴 그룹의 대표였다. 게다가 모두가 인정하는 유명한 꽃미남이었다.
온지성은 이 클럽의 실제 소유주이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안윤아는 자주 헌터바에 방문했고, 우연히 온지성과 자주 마주치며 안면을 트게 되었다.
온지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이서현을 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직원들한테 듣기로는 윤아 씨가 남자 모델을 18명씩이나 불러서 친구분께 서프라이즈를 해줬다고 하던데... 그 친구분이 바로 이 아름다운 여성분이신가요?”
온지성의 말이 끝나자, 주변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김도하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그는 당장 레이저라도 나올 것 같은 눈으로 이서현을 차갑게 쏘아보았다.
“이서현, 너 정말 수치심이란 걸 못 느끼는 거야? 못 참아서 안달이 날 정도로 외로웠던 거야?”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벌써 남자 모델을 부르다니... 그것도 18명이나! 대체 어디까지 대담해질 셈이야?’
이서현은 코웃음을 치며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김도하 씨, 우리는 곧 이혼할 사이잖아요. 제 일에 참견하지 말아주세요.”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떠올린 듯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아참, 깜박하고 중요한 걸 놓칠 뻔했네요. 여기 있던 선수들은 하나같이 도하 씨보다 잘하던데요?”
김도하는 이를 악물었다.
“이서현! 너...”
온지성은 이서현의 말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캐치했다. 그의 얼굴에 잠깐이나마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김도하가 김상철 회장의 강요로 결혼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결혼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매력적인 여자가 바로 도하의 아내였다니...’
온지성은 이서현을 보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는 재미있어 보이는 이 상황에 참전이라도 하려는 듯 말했다.
“형수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온지성이에요. 도하의 친구입니다. 도하와 이혼할 거라면 저를 한 번 고려해 보는 건 어때요? 걱정 마세요. 도하보다 훨씬 잘해요. 여러 면에서 더 잘해 줄 거고요. 특히나 지금은 온 세상에 서현 씨밖에 안 보이니까요. 오늘 밤 저에게 모셔다드릴 기회를 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네요.”
온지성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이서현에게 제안하고 있었다.
이서현은 온지성과 김도하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에 그 제안을 거절하려 했으나, 그때 김도하의 전화가 울리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김도하는 전화기의 화면을 확인한 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서현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서현, 앞으로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오늘 같은 짓은 다시 하지 마.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난 먼저 가봐야 해.”
마지막 말은 온지성을 향해 한 것이었다. 그렇게 말을 마친 김도하는 서둘러 클럽을 떠났다.
이서현은 김도하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비웃듯 미소를 지었다.
‘김도하가 저렇게 급하게 떠나는 이유라면 임태연에 관한 일 말고 또 뭐가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