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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휴대폰에서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지금 건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 후 다시 걸어주세요..." 송민지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도 없는 번호네. 번호를 지웠나 봐.' 진심으로 한 사람을 포기하면 앞으로 연락할 수 없다는 걸 알아도 마음이 크게 아프지 않다. 송민지는 이런 결말을 오래 전에 알았다. 아쉬운 것일까? 하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는 것 같았다. 전생에 그런 결말을 맞이했기에 송민지는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4, 5세부터 배민훈은 그녀를 데리고 다녔고 배민훈과 함께 한 시간이 11년이다. '잘된 거야. 앞으로는 주익현과의 일을 배민훈에게 들킬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 배민훈은 어릴 때부터 그녀를 엄격하게 통제했고, 그는 오빠의 역할 뿐만 아니라 엄격한 부모의 역할도 맡았다. 그녀가 그에게 완전히 의지할 때 송민지는 배민훈이 자신의 것이 아닌 걸 잊었다. 밤 8시 30분, 낡고 좁은 원룸은 여전히 조명이 켜져 있었다. 송민지가 숙제를 하려던 그때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어떻게 그 번호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있을까?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도 그 번호에 전화를 걸면 그는 신처럼 그녀의 앞에 나타난다. 송민지 자신조차 그 번호를 보고 싱긋 웃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전화가 거의 끊길 때 송민지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 숨소리만 들렸다. 침묵 속에 송민지는 공식으로 가득한 원고지에 볼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주익현?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열자 송민지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다 알게 되었어." 송민지는 어리둥절했다. "뭘 알았는데?" 순간, 송민지는 갑자기 머리가 번쩍하는 느낌이 들더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다급히 해명했다. "누가 너한테 그 일을 알아보라고 했어? 너랑 상관없어. 그냥 시험을 보다가 정신이 팔려서 실수로 네 이름을 적은 거야.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해. 알겠어?" 송민지는 그 순간 주익현의 남자다운 얼굴이 떠올랐으며 그 바른 자세와 엄숙한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한테 왜 연락한 거야?" 주익현이 입을 뗐다. "반성문을 쓸 필요 없어." 송민지가 물었다. "네가 내 대신 쓴 거야?" 주익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들킬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글씨체로 썼어. 내일 가져다줄게." 거울에 그녀의 순수한 얼굴이 비췄다. 송민지는 고개를 숙여 싱긋 웃었다. 그렇다, 그는 여전히 그녀에게 잘해준다. "네 잘못이 아니니 그렇게 할 필요 없어." 주익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익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송민지는 수학책을 꺼냈다. "주익현, 공부 좀 배워줘. 선생님과 이번 모의고사에서 상위 10위 안에 들겠다고 약속했어. 나 좀 도와줄래?" 이번에 그는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좋아." 송민지는 그의 가정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매번 어머니를 치료할 비용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주익현, 내가 비용을 지불할게." 하지만 주익현이 거절했다. "네 돈은 안 받아." 송민지는 자신이 풀지 못한 문제를 명확하게 말했고 수화가 너머의 주익현은 아주 인내심있게 문제를 설명해주었다. 주익현이 말이 맞았다. 그녀는 기초가 나쁜 편이 아니라 공식만 설명해주니 곧바로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전생에 그녀는 배민훈의 인맥으로 간신히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배민훈의 도움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시도하고 싶다. 주익현은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었고 송민지가 그의 말대로 문제를 풀어보고는 정답을 공유했다. 결국 아주 쉽게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송민지는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주익현, 내가 문제를 풀었어. 지금 보니 너무 어려운 건 아니야." 주익현이 가볍게 대답했다. "내가 말했잖아. 넌 기초가 나쁘지 않다고." "송민지, 열심히 공부해..." 그는 왜 그녀를 이토록 걱정하는 걸까? 두 사람은 겨우 세 번 만난 사이인데 주익현은 왜 자신의 전부를 주려고 하는 걸까? "응. 그래." 말이 끝나자마자 주익현은 그녀에게 다른 문제를 설명해 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송민지는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주익현이 잠시 멈칫했다. "남은 부분을 간략하게 설명할게. 다 듣고 일찍 자." 송민지가 나른하게 대답했다. "응. 넌?" 수화기 너머의 시끄러운 소리에 아직 바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익현은 한 마디만 말했다. "일찍 자." "잠깐만!" 주익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때, 송민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주익현, 잘자." 3, 4초 후에 주익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잘자." 그렇게 송민지는 전화를 끊고 책을 정리한 뒤에 핸드폰을 끈 채로 침대 옆에 충전하고 방에는 조명 하나만 남겼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아무런 악몽을 꾸지 않았다. 눈을 떠 보니 날이 밝은 상태였다. 알람이 울리자 송민지는 얼른 세수한 뒤 집을 나섰다. 그렇게 송민지는 버스에 오른 뒤 평소 앉던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두 정거장이 지나니 정거장에서 같은 교복을 입은 채 버스를 기다리는 주익현을 발견했다. 송민지는 창문에 기댄 채 턱을 받치고 18세의 주익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송민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18살인 주익현은 이토록 평범한데 왜 삼십대의 주익현은 그토록 멋있어진 걸까? 그는 조각 같은 얼굴에 구릿빛 피부까지 더해져 남자다운 매력이 있다. 그때 버스가 멈추자 주익현이 버스에 탔다. 큰 키에 건장한 체격 때문에 인파 속에서 눈에 띄었다. 그때 송민지가 자연스럽게 안쪽 좌석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주익현은 못본 것처럼 빈 자리에 앉지 않고 그녀의 앞에 선 채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그 버스에서는 동기를 만나는 일이 적은데 말이다. 손잡이를 잡고 있는 그의 팔은 아주 힘있어 보였고 손바닥은 너무 거칠어 핸드크림을 바른다 해도 굳은 살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송민지는 전생에 주익현의 피부를 만질 때마다 너무 거칠어 불편하다고 했다. 그때 주익현이 가방에서 곱게 접은 흰색 종이를 꺼냈다. "받아." "또 네가 쓴 러브레터야?" 송민지가 피식 웃으며 농담을 하자 주익현의 귀 끝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비록 얼굴은 덤덤했지만 귀 때문에 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그 순간 주익현은 말문이 막혔다. 종이를 열어보니 송민지의 글씨체와 아주 닮은 800자의 반성문이었다. 그녀는 믿기 힘든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정말 네가 쓴 거야?" 첫 줄을 보니 송민지의 글씨체와 거의 닮았다. 하지만 주익현의 글씨체는 이렇지 않는데 말이다. 한 사람의 글씨체를 모방하는 것은 단기간에 연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주익현이 그녀 몰래 얼마나 많은 일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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