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송민지는 그를 무시한 채 빗자루를 빼앗아 마지막 남은 복도를 닦았다.
"날 무시하는 거 아니었어? 졸업할 때까지 나한테 말 걸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송민지가 그 말을 하고는 곧바로 마지막 정리를 마치고 가방을 들고 자리를 떠나려던 그때 주익현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더니 교실 벽으로 밀었다.
송민지가 그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분명 18살인데 그는 아주 성숙한 얼굴이었다. 송민지만이 주익현이 30대가 지난 뒤 얼마나 많은 여성의 인기를 끄는지 알 것이다. 시장의 딸, 모델, 그리고 여배우까지 감히 셀 수도 없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매력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눈빛은 전생과 같이 부드러움과 결단력이 있다.
그때 주익현이 입을 뗐다. "그럼 넌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야? 공부 성적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거지가 널 가까이하면 넌 쓰레기 같다고 역겨워하잖아. 내가 널 멀리하니 넌 기뻐해야 하잖아?"
"아니야!" 송민지가 다급히 그의 손목을 잡았다. "주익현, 지난번 일은 내가 미안해. 그냥 홧김에 그런 말을 한 거야. 단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주익현, 미안해." 전생에 결국 모든 죄를 감당한 채 수감 생활을 하고 결국 무기징역까지 받은 주익현을 떠올리자 송민지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려내렸다. "내가... 미안해... 주익현."
"진심으로 사과할게."
그녀의 구슬비 같은 눈물 때문인지 언제나 차분했던 주익현은 순간 당황했다. "왜 우는 거야?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내가 너한테 잘못한 줄 알겠어."
"울지마, 앞으로... 널 무시하지 않을게!" 주익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친구들이 네가 교무실로 불려간 걸 봤대. 내 존재 때문에 네가 피곤해진 건 아니지?"
송민지는 눈물을 닦더니 더듬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야. 너랑 상관없어. 이번에는 성적이 안 좋아 교무실로 불려간 거야."
그 말에 주익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시험지는 어디 있어? 보여줘."
송민지가 시험지를 보여주면 머리가 똑똑한 주익현은 곧바로 자신의 이름이 적힌 걸 알아차릴 것이다.
하여 그녀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직 채점 중이야. 내일이 되어야 나올 거야."
그때 주익현이 물었다. "지난번에 너한테 준 필기는 다 외운 거야?"
송민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주익현은 감정을 누른 채 자그마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넌 기초가 나쁜 편은 아니야. 문과반은 심도가 깊은 편이 아니니 남은 2년 동안 내가 준 것만 기억해도 좋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 거야."
"나 먼저 갈게, 너도 이만 돌아가. 그리고 내가 말한 걸 기억해, 이해가 안 되면 연락해."
그가 돌아서려는 순간, 송민지가 갑자기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근육진 피부와 부드러운 눈빛을 보자 송민지는 자기도 모르게 멈칫했다.
"주익현, 지난번 일은 내가 정말 미안해. 앞으로 그런 막말을 하지 않을게. 그러니 용서해줄래?"
주익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 말을 들은 송민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 주익현이 손목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야? 들켜서 처벌을 받고 싶어?"
송민지는 곧바로 손을 놓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음속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돌이 조금 사라진 것 같았다.
'주익현, 이번에는... 널 괴롭히지 않을 거야.'
...
스타그룹.
마지막 회의가 끝나자 회의실 문을 여니 명품 정장에, 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 강한 포스를 풍기는 배민훈이 걸어나왔다. 그리고 고서원이 그의 뒤를 따라 다음 일정을 보고하고 있었다.
내일은 금요일이기에 배씨 가문의 규칙 대로 가족 연회가 있다.
하여 배민훈은 모든 접대를 미루고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 "조사하라던 건 다 한 거야?"
고서원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주익현은 청성 출신이고 어머니의 요독증 때문에 D시로 이사를 왔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한의원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소득이 적은 데다가 매달 의료비가 많이 나가 주익현의 주요 수입원은 서울대에 특별입학하여 받은 장학금 뿐이에요."
"또한 주익현은 매일 방과 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민지 양과는 개학했을 때 알게 되었어요. 일주일 전에 두 사람이 크게 싸웠다고 합니다."
그 시각 배민훈의 위험한 눈동자는 아주 덤덤하였고 얼굴에도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문서를 보며 사인을 했다.
보고가 끝나자 그가 가볍게 한마디 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을 보고할 필요 없어. 매주 민지의 카드에 생활비를 입금해. 그리고 2년간의 고등학교 학비도."
'앞으로 민지 양을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고서원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생명을 구한 은혜는 10여년 동안 갚은 셈이다.
송민지는 태어날 때부터 대표님과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게다가 배씨 가문과 이씨 가문이 혼약을 맺으려 하니 송민지의 존재는 불필요해졌다.
"네." 고서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그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신비한 번호가 보낸 메시지였고 송민지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이다.
하여 고서원은 메시지를 대충 훑어보았으며 함께 온 사진도 보았다.
송민지가 의자에 선 채 칠판을 닦고 있었고 그 옆에는 주익현이 서 있다.
하지만 고서원은 송민지가 주익현을 바라보는 눈빛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한 사람을 혐오할 때의 표정이 아니다. 분명 두 사람의 사이를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사진 속에서 송민지는 교실 구석에 서 있는 상황이었고
어떻게 보든, 두 사람의 사이가 평범한 것 같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 연애하는 것은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이다.
게다가 송민지가 어떤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더라도 그녀의 계좌에 있는 돈으로 결혼할 때까지 아무런 걱정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여 고서원은 굳게 닫힌 대표 사무실을 힐끔 보고는 시선을 거두고 메시지를 보냈다. [앞으로 보고할 필요 없어.]
그렇게 그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그 사진들을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그 시각, 송민지는 집에 돌아오기 전에 집 아래에서 국수를 먹었다. 집에 도착한 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나온 뒤 테이블에 있는 핸드폰을 보더니 젖은 머리카락을 닦으며 머뭇거리다가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그녀는 연락처에 유일하게 있는 그 번호를 보더니 결국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3초가 흘렀다. 송민지는 호흡을 가다듬은 채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