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같은 시각, 웃통을 깐 채 품에 여자를 안고 있는 박시언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박승윤과 함께 그녀와 작별할 때, 우예린의 눈빛은 차분함 속에 싸늘함이 가득했다.
순간 그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을 쓰다듬고 있는 강지민은 그의 이상한 기색을 느끼지 못한 채 그의 얼굴을 향해 붉은 입술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때, 남자는 갑자기 그녀를 밀쳐냈다.
“시언 씨?”
강지민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그를 잡으려 했지만 박시언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침대에서 내려와 찢어진 셔츠를 집어 들더니 한숨을 내쉬며 셔츠를 다시 바닥에 던지고 옷장에서 새 셔츠를 꺼내 입고 떠나려 했다.
“시언 씨, 어디 가요?”
그가 문을 향해 다급히 걸어가는 모습에 강지민은 당황한 듯 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와 그의 뒤를 따르려고 했지만 박시언이 그녀를 막았다.
“나 승윤이랑 나갔다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박시언의 다소 엄격한 경고에 강지민은 발걸음을 멈춘 채 박승윤을 안고 계단을 내려가는 박시언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지만 곧 슬리퍼를 신고 그를 따라 내려갔다.
문이 열리는 순간, 택배 기사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여기 강지민 씨 댁 맞아요?”
강지민은 부자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슨 일이죠?”
택배 기사는 몇 걸음 물러서 커다란 박스 두 개를 보여주었다.
“이건 우예린 씨가 보낸 물건이니 여기 서명해 주세요.”
박시언은 본능적으로 두 개의 박스를 쳐다보았고 어느덧 잠에서 깬 박승윤도 잠결에 물었다.
“엄마?”
강지민은 이들 부자의 반응을 살필 여유도 없이 서명을 마치고 박스를 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택배를 보냈다고?”
박시언도 박승윤을 내려놓고 박스로 다가갔다.
박스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하던 강지민은 몸이 뻣뻣하게 굳어진 채 무언가를 꺼냈다.
“이게 왜...”
남자는 여자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고 황급히 앞으로 다가가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그와 그의 아들이 우예린에게 선물했던 것들과 우예린이 그들에게 주었던 선물들이 가득했다.
그는 혼란스러움을 뒤로한 채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심장은 점점 더 빨리 뛰기 시작해 박스를 잡은 손에 더 힘을 꽉 주었다.
이것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박승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물었다.
“엄마가 이걸 왜 여기로 보낸 거야?”
이때 옆에 있던 택배 기사는 뭔가 떠오른 듯 가족사진을 꺼내 박스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아, 깜빡할 뻔했네요. 우예린 씨가 이 물건들과 남편, 그리고 아들까지 전부 필요 없으니 강지민 씨에게 넘긴다고 했어요.”
순간 박시언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렸다.
그 가족사진은 그와 그의 아들, 그리고 강지민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녀가 알게 된 걸까?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강지민이 뒤에서 그를 불렀지만 그는 아들을 한 팔로 안은 채 바로 차로 향했고 점점 더 어두워지는 아빠의 얼굴에 박승윤은 너무 놀라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신호등이 순식간에 바뀌자 박시언은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어두운 표정으로 건물의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이때 보석 광고 영상을 재생하던 스크린이 갑자기 깜빡이더니 박시언과 강지민이 함께 찍은 친밀한 사진들이 번갈아 나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한때 실시간 검색어에 수도 없이 올랐고 박시언 역시 밖에서 자주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곤 했기에 사람들은 금세 그를 알아보았고 옆에 있는 여자가 우예린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사람들은 스크린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휴대폰을 꺼내 촬영하기 시작했고 차 안에 있던 두 부자 역시 서로를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것들이 어떻게 새 나간 거지?
그 순간 화면에 나온 한 문구가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박시언, 박승윤, 강지민 세 가족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우예린이.]
박시언은 핸들을 꽉 쥐며 스크린을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우예린!
우예린이 어떻게!
입을 열려는 순간 신호등이 바뀌고 뒤에서 경적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박시언의 마이바흐는 도로를 질주하며 빠르게 사라졌는데 평소 한 시간 걸리던 거리를 오늘은 4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차를 급히 멈추고 거칠게 차 문을 닫은 뒤 별장으로 걸어가 힘껏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