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8장

역시나, 벨 소리를 듣자마자 박시언은 휴대폰을 한 번 쳐다보더니 그녀를 피해 한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강지민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그의 표정은 미세하게 변하더니 전화를 끊고 박승윤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는 아들에게 조용히 무언가를 말한 후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예린아, 나 승윤이랑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어. 미안하지만 택시 타고 집에 돌아가. 기념일은 내가 다음에 보충해 줄게, 응?” 아들까지 대동하며 볼 일이 뭐가 있을까? 그저 강지민과 시간을 보내기 위한 핑계일 뿐이지. 그의 거짓말은 서툴렀으나 그녀는 굳이 들추어낼 힘도 없었다. 우예린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말했다. “그래, 안전하게 다녀와.” 박시언은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아들을 안아 들고는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다시 돌아와 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예린아, 다음에 내가 반드시 깜짝이벤트로 놀라게 해줄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뒤돌아 학교를 나섰고 몇 걸음쯤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우예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시언, 박승윤.” 두 부자는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려 했다.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앞으로 걸어.” “두 사람한테 ‘안녕’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그녀는 ‘안녕’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지만 박시언은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한 채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고, 박승윤도 작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엄마, 안녕.”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떠났고 우예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점점 사라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참 뒤, 그들의 뒷모습은 그녀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시선을 거둔 채 홀로 걷기 시작했는데 곳곳마다 청춘의 기운이 가득했고 그들의 추억이 없는 곳이 없었다. 교실에 들어서니 그녀는 마치 그 시절 그녀의 뒷자리에 앉았던 잘생긴 소년이 그녀를 쿡쿡 찌르며 귀가 빨개져서 그녀에게 묻던 장면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우예린, 너 내 여자 친구 할래?” 오동나무 앞으로 걸어가니 그녀는 또 그해 그 소년이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달빛 아래에서 나무에 글씨를 새기던 모습이 떠올랐다. [열여덟의 박시언은 열일곱의 우예린을 영원히 사랑해] 학교 복도에 도착하니 문득 정전이 됐던 그날이 떠올랐다. 건물 안은 떠들썩했지만 그는 헐떡이며 그녀를 복도 구석으로 데려가 서툴게 첫 키스를 나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마치 턱시도에 나비넥타이를 맨 채 장미를 들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긴장된 얼굴로 애정 가득한 눈빛을 보내던 그 남자를 다시 본 듯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우예린, 나와 결혼해 줘. 영원히 널 아끼고 사랑할게.” 또 이렇게도 말했었다. “우예린, 내 인생에 여자란 너 하나뿐이야. 평생 너한테만 여보라고 부를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예린, 내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절대 널 배신하지 않을게.”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그 맹세는 한 글자도 빠짐없이 다른 여자에게로 옮겨졌다. 그러다 결국 그녀는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이 다 되어갔지만 박시언과 박승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강지민과 저녁을 먹고 있을까? 영화를 보고 있을까? 아니면 그녀에게 하던 것처럼 강지민을 재워주고 있을까? 우예린은 소파에 조용히 앉아 시계가 완전히 12시를 가리킬 때까지 기다렸다. 정각이 되자 그녀는 눈을 감고 시스템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숙주님,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 우예린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대답했다. [준비됐어. 날 집으로 데려가 줘.] 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눈앞에 환한 빛이 비추었고 곧 그 빛은 그녀를 완전히 감싼 채 그녀의 영혼과 육체를 조금씩 갈라놓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빛은 서서히 사라지고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의 심장은 그대로 멈춰버렸으며 그저 입가에 옅은 미소만 남아 있었다. 박시언, 박승윤, 난 집으로 간다. 평생 너희와는 다시 만나는 일이 없을 거야.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