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모든 사람의 관심이 김시아에게 쏠린 틈을 타 김유미는 점장을 향해 눈짓했다. 점장은 곧 고개를 끄덕이며 김시아가 전에 소파에 두었던 가방에 여자 손목시계를 몰래 집어넣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된 것을 본 김유미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물건을 훔쳤다는 죄명을 그녀의 머리에 씌우기만 한다면 앞으로 김시아는 경성에서 평판이 나빠질 것이다.
“우리 점원을 다치게 한 것도 모자라 가게의 물건도 훔치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점장은 가방을 집어 들고 사람들을 향해 가방 속의 시계를 보여주며 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유미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는데 청순한 얼굴에는 충격과 실망이 어린 표정이 역력했다.
“언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언니가 시골에서 자라서 좋은 걸 본 적이 없다는 걸 아는데 그렇다고 훔치면 안 돼.”
김유미의 말에 주위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김시아를 더욱 경멸하기 시작했다.
“시골 촌뜨기였구나, 어쩐지 손버릇이 고약하더라니!”
“그러니까, 살던 곳으로 꺼져. 경성은 널 환영하지 않아!”
“그래, 시골로 꺼져...”
점장은 더욱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김시아를 가리키며 욕을 퍼부었다.
“우리는 고급 브랜드 가게인데 돈이 없으면 들어오지 말아요. 이곳은 당신 같은 가난뱅이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요.”
“누구한테 가난뱅이라고 하는 거야?”
인기척을 듣고 탈의실에서 나온 심수정은 화가 치밀어 점장 앞으로 달려가서 따져 물었다.
“이런 너덜너덜한 가게 주제에, 손님을 이렇게 대하는 거야?”
심수정을 본 점장은 순간 안색이 변하더니 아첨하며 입을 열었다.
“사모님, 오해하셨습니다. 우리 가게의 이념은 ‘고객이 바로 하느님’입니다. 하지만 저 여자는 우리 점원을 다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가게의 물건을 훔쳤어요. 이런 사람은 반드시 엄하게 벌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닥쳐!”
심수정은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기서 헛소리 그만해. 우리 시아가 뭐가 부족해서 너희 가게의 고물을 훔치겠어?”
시아가 원하기만 한다면 집안의 어마어마한 가산이 전부 그녀의 것이 될 텐데 말이다.
점장은 심수정의 질책에 말문이 막혔지만 김유미의 경고하는 눈빛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시모님, 정말 제가 헛소리를 한 게 아니에요. 저 여자가 우리 점원을 다치게 하고,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을 모두가 보았어요.”
“맞아요, 우리 다 봤어요.”
구경하던 사람들이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김유미의 눈에는 득의양양한 빛이 더욱 짙어졌지만 김시아를 위하는 척 한마디 했다.
“언니, 언니가 진심으로 모두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하면 사람들도 언니를 용서할 거야.”
그녀는 ‘도둑’이라는 죄명을 김시아에게 씌우려는 것이 분명했다.
“유미야, 이게 무슨 소리야!”
심수정은 처음으로 김유미에게 엄숙한 어투로 말했다.
“시아가 절대 도둑질을 할 수 없으니 사과할 필요 없어.”
말을 마친 심수정은 다시 고개를 돌려 조용히 김시아를 달래기 시작했다.
“시아야, 걱정하지마. 엄마는 네 편이야.”
김시아는 마음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아 예쁜 눈에 차올랐던 한기를 조금 거두었다.
심수정이 김시아를 감싸는 것을 본 김유미는 더 불쾌해졌지만 표정을 감추고 입을 열었다.
“큰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제가 너무 언니 걱정했나 봐요. 저도 언니가 물건을 훔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요. CCTV를 돌려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점장은 이미 그녀에게 매수당했고, CCTV는 그들이 가지고 있으니 알아서 삭제하리 생각했다.
“맞아요. 사모님, 지금 CCTV를 돌려 보여드릴게요.”
점장은 곧 눈치채고 컴퓨터 옆으로 달려가 CCTV를 틀었다.
CCTV에 찍힌 점원들이 말썽을 부리는 장면은 모두 삭제되고, 김시아가 손찌검하는 장면만 남았다.
“이것 봐, 저 여자가 소독제를 남의 눈에 뿌렸잖아. 정말 심보가 고약해!”
“맞아요. 도둑질도 하고 손찌검도 하다니, 너무 나빠요! ”
사람들의 험담을 들으면서도 김시아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동영상에 문제가 있네요.”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점장은 깜짝 놀랐지만 표정을 가다듬고 반박했다.
“다들 보고 있는데 헛소리하지 말아요.”
“당신들이 동영상에 손댔잖아요.”
말을 뱉은 김시아는 쓸데없는 말을 하기 귀찮아서 곧장 컴퓨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점장은 겁에 질려 그녀를 말리려고 했지만 그녀의 눈빛에 놀라 물러났다.
‘시골에서 돌아온 시골뜨기에게서 어떻게 그렇게 강한 기운이 느껴지지?’
김시아는 눈빛을 컴퓨터로 향하더니 눈을 내리깔고 하얀 손끝으로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 모습을 본 김유미는 시큰둥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지시하에 점장은 이미 그 비디오 클립들을 삭제했는데 그 삭제된 모니터링 비디오들을 절대 다시 찾을 수 없다.
“언니,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랐으니 컴퓨터를 접할 기회가 적었을 거잖아. 괜히 만져서 고장나면 어떻게 해...”
김유미의 비아냥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시아는 손을 거두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됐다.”
삭제된 cctv가 모두 복구돼 자동 재생되자 점장들은 순식간에 안색이 변하며 당황했다.
영상에는 점원이 김시아의 눈에 소독제를 뿌리려다 김시아에게 혼쭐이 난 것이 찍혀 있었다.
물건을 훔쳤다는 것은 더더욱 사실이 아니었다. CCTV에는 점장이 김시아의 가방에 시계를 넣고 일부러 그녀를 모욕하는 장면이 똑똑히 찍혔다.
“세상에, 알고 보니 이랬구나. 우리 모두 이 어린 애를 잘못 탓했네요.”
“당신네 가게가 이렇게 뻔뻔하게 이 아가씨에게 누명을 씌울 줄은 몰랐어요. 정말 징그럽네요. 다시는 이 가게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거예요!”
“맞아요, 우리도 그래요...”
많은 사람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조금 전 점장에게 휘둘렸다는 생각에 그들은 크게 분노했다.
욕설을 들으며 점장 등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김시아가 삭제된 비디오를 복구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망했어...’
영상은 점장이 김시아를 향해 삿대질하며 시골뜨기라고 욕하는 장면에서 멈췄고 심수정은 화가 나 몸이 떨려왔다.
“당신들은 우리 집 시아를 의심하고 욕설도 퍼부었어. 더는 경성에 있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김씨 가문은 경성에서 가장 잘나가는 부자라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라지게 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사모님,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점장 등은 당황하여 김유미를 향해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모든 것은 그녀가 시킨 것이다.
‘김시아가 김씨 가문의 가난한 친척일 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사모님이 그녀를 이렇게 감싸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