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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도 매번 이렇게 자애롭게 김시아를 바라보았다... 김시아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긋하게 말했다.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천사처럼 예뻤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듣기 좋았다. 보면 볼수록 김시아가 마음에 든 여희숙은 그녀의 손을 놓기 아까워 꼭 잡고 있었다. 얘기도 더 하고 싶었지만 갓 깨어나서 몸이 여전히 허약했던 여희숙은 몇 마디 말하지 못하고 다시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구급차가 도착했고 의사는 여희숙을 진찰해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르신은 괜찮아졌지만 그래도 병원에 호송하여 몸조리하셔야 해요. 아가씨가 응급 처치를 잘 해주어서 무탈하게 이번 고비를 넘겼어요. 아니면 정말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 거예요.” 감격에 겨운 여희숙은 애써 목에서 옥패를 꺼내 김시아의 손에 쥐여주었다. “애야, 이걸 받아다오. 나중에 일이 있으면 나 찾아와...” 옥패는 따뜻하고 촉촉한 촉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딱 봐도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김시아가 거절하기도 전에 여희숙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보내졌다. 원래 김시아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경의를 표하며 숙연해졌다. “어머나, 이 아가씨가 정말 의술을 알고 있어요. 조금전 할머니도 구했어요.” “그럼요. 어린 나이에 이렇게 훌륭한 의술을 익혔으니 참 대단해요!” “능력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착해요. 아까 그 할머니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거예요!” 쇼핑몰에서 나온 김유미는 구경꾼들이 김시아를 향한 칭찬을 듣고 나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렸다. 그러자 김유미는 시큰둥해서 입을 삐죽거렸다.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가 어찌 의술을 알 수 있겠어? 그저 우연일 뿐이야.’ 이렇게 생각한 김유미는 콧방귀를 뀌며 심드렁해서 말했다. “언니, 시골에서 갓 왔으니 잘 모를 수도 있는데, 경성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돈을 사기 치는 사람이 많아. 게다가 김씨 가문은 경성의 최고 부자라 질투하는 사람이 많아서 보잘것없는 의술로 자칫했다간 말썽을 일으킬 수 있어.” 말끝마다 김씨 가문을 거론하는 김유미는 김시아를 한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게 분명했다. 김시아의 정교한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고 쳐다보기도 귀찮아 쇼핑몰을 향해 걸어갔다. 김시아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본 김시아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라 버럭 화를 냈다. “김시아, 너랑 얘기하고 있는데 못 들었어?” “김시아, 감히 나를 무시하다니...” “너 말이 너무 많아.” 발걸음을 멈추고 김유미를 바라보는 김사아의 눈빛에는 맹수와 같은 섬뜩한 빛이 떠올라 보는 사람이 두려움에 떨게 했다. “시끄러워.” 눈빛 하나만으로도 김유미는 한기가 발바닥에서 정수리로 솟아오르는 것 같았고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귀찮게 하지 마.”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김유미를 바라보던 김시아는 입을 다물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순간 김유미의 안색이 사나워지더니 원망스러운 듯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촌뜨기한테 겁먹었어. 그런데 김시아 손에 든 옥패는 어디서 난 걸까? 한눈에 봐도 좋은 물건인데 내가 빼앗으면...’ 가게 안. 김준수와 심수정은 드레스를 입어보러 갔다. 직원은 김시아가 심수정과 함께 온 것을 알아보았으나 그녀의 평범한 옷차림을 보고 심수정의 거지 친척으로 여겼고, 김유미의 당부도 생각났다. 김유미는 김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데 감히 그런 사람의 미움을 살 수 없었던 직원은 김시아를 골탕먹이라는 명령에 따라야 했다. “어머, 뭐 하세요? 누가 이렇게 들어오라고 했어요? 명품 매장을 더럽힐 수 있으니촌뜨기는 출입 금지예요!” “가게가 궁상스러워 보이지 않게 소독을 다시 해야겠어요.” 말이 끝나자 종업원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에 놓인 소독수를 들고 김시아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눈을 향해 뿌리려 했다. 순간 김시아는 민첩하게 종업원의 손목을 꺾어 잡았고, 소독수는 결국 김시아의 눈에 뿌려지지 못한 채 모두 종업원의 눈과 입으로 날아갔다. 그때 김시아의 차갑고 요염한 목소리가 정수리에서 들려왔다. “이젠, 충분히 깨끗해졌겠지?” “아... 아파 죽을 것 같아...” 소독수는 눈과 피부에 가한 자극을 주었고 종업원은 너무 아파 비명을 질렀다. “눈이 너무 아파...” 뒤를 이어 들어온 김유미는 이 장면을 보고 눈빛이 더욱 음흉해졌다. ‘바보, 김시아를 골탕 먹이는 사소한 일도 제대로 못 하다니!’ “언니, 너무했어. 소독수를 종업원 눈에 뿌리면 어떻게 해?” 명품 가게 안이 소란스러워지자 구경꾼들이 몰려왔다. 이때 김유미가 일부러 언성을 높여 말하다 보니 김시아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래요. 이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왜 이렇게 심보가 고약해요!” “맞아요. 소독수를 눈에 뿌리는 것은 잘못된 짓이에요!” “그럼요. 고약할뿐더러 교양도 없어요...” 김시아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 김유미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심하게 욕할수록 좋아. 이 촌뜨기 김시아가 나보다 못하다는걸 심수정과 김준수에게 보여줘야 해!’ 자신의 편에 선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본 직원은 김시아를 매섭게 쏘아보더니 이내 눈물을 훔치며 불쌍하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 때문에 구경꾼들은 그 직원을 더욱 동정하게 되었고 김시아에 대한 불만도 더 깊어졌다. 김유미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 속에서 걸어 나와 착한 척 입을 열었다. “언니, 이렇게 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해. 진심으로 사과하면 다들 언니를 용서해줄 거야!” 김시아는 눈을 치켜뜨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 지금 후회하고 있어.” 이 말을 기다리고 있던 김유미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표정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 앞에서 사과하게 하면 충분히 창피하게 한 셈이다. “언니, 잘못을 알고 고칠 수 있으면 그것보다 더 좋은 성품이 없어. 그럼 바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 김유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시아는 말을 끊어버렸다. “아까 소독수를 적게 뿌린 게 후회돼. 아예 입에 부어 넣어야 했어.” 김시아의 패기 있는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멍해졌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화를 냈다. “구제 불능이야!” “그럼. 저 집은 자식 농사를 망쳤구먼!” “어린 여자가 심보가 이렇게 고약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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