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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고마워요 오빠.” 소은혜가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 “아 참, 은혜야, 아저씨도 선물 하나 준비했어. 실업 공고에 다니는 기념으로다가.” 민용수는 아들더러 서재에 가서 미국산 펜을 가져오라고 했다. 소은혜는 조심스럽게 선물 상자를 열었는데 특유의 실버색 외관의 매끄럽고 견고한 펜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촉감도 아주 좋고 쉽게 미끄러지지도 않았다. “고마워요, 아저씨... 저 꼭 열심히 공부할게요.” 소은혜는 좀 전에 집안에 들어올 때 소은비가 했던 대로 심심한 경례를 올렸다.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고 캐리어와 펜에서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 행여나 누가 뺏어갈까 봐 양손에 가방과 펜을 꼭 잡고 있는 그녀였다. 이때 문득 뭔가 생각난 듯 일부러 민용수에게 물었다. “근데... 언니 거는요?”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은비는 걱정 마. 고등학교 졸업하거든 아저씨가 아주 큰 졸업선물을 해줄게.” 민용수가 담담하게 웃으며 격려의 눈빛을 보냈다. 그녀가 대학에 붙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단지 고등학교만 순조롭게 나오길 바랄 뿐이었다. 소은비도 가볍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아저씨.” 게시물의 내용대로 소은비는 며느리의 신분으로 민씨 가문에 온 게 아니었고 소은혜가 받은 개학 선물도 똑같았다. 다만 아무런 선물도 못 받은 원주인 소은비는 또 한 번 소란을 피우고 말았다. 이에 민준혁은 그녀가 점점 더 싫어졌고 민씨 가문 사람들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할머니, 아빠, 저는 그럼 먼저 가볼게요.” 민준혁은 소은비를 힐긋 쳐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간 후에도 계속 조신한 척할 셈이야?’ 진영자와 민용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때 가정부 오수미가 마침 밥상을 푸짐하게 차리고 나왔다. 이제 막 문 앞에 도착했는데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수박을 두 개 들고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오더니 입구에 서 있는 민준혁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형 언제 왔어? 선은 잘 봤고? 미래 우리 사촌 형수님은 미인이셔?” 그는 말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안을 들여다보더니 빨개진 얼굴로 소파에 앉은 소은혜를 보고 흠칫 머뭇거렸다. 곧이어 그녀 뒤의 소은비를 보고 나서야 실망 어린 눈가에 희열이 조금 어렸다. 그는 쑥스러운듯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소은비를 사촌 형의 맞선 상대로 여긴 게 뻔했다. “형수님 미인이시네. 우리 학교 퀸카보다 훨씬 예뻐.” 그의 이름은 정지호, 민준혁 고모의 아들이고 올해 갓 스무 살이 되었다. 너무나 미인이신 ‘사촌 형수님’을 보더니 어쩔 바를 몰라서 쥐고 있던 수박만 꼼지락거렸다. “에헴, 지호야, 여긴 다 네 여동생이야. 앞으로 우리 집에서 지내면서 학교 다닐 거야. 은비는 진안에서 고등학교 다닐 테고 은혜는 실업 공고에 붙었어.” 민용수의 말뜻은 더할 나위 없이 명확했다. 두 사람 전부 민준혁의 여동생일 뿐이라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곧이어 두 자매에게도 정지호를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준혁의 사촌 동생 정지호야. 신화대 2학년생이고. 은비 넌 어려운 과목 있으면 지호한테 물어봐. 네가 곧 전학 가게 될 상은고가 바로 지호의 모교거든. 지호 엄마가 그 학교 교무부장이야.” “반가워요, 지호 오빠. 소은비예요. 제 동생 소은혜가 민준혁 씨 맞선 상대고요.” 소은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한 어투로 설명했다. 게시물 속 정지호는 원주인 소은비가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유독 소은혜를 동정하고 감싸주었다. ‘엥? 동생이 맞선 상대였어?’ 정지호는 방금 사람을 잘못 짚은 자신의 행동 때문에 너무 뻘쭘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오빠, 저는 소은혜예요. 오빠 정말 대단하네요. 대학생이라니, 오빠를 본보기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어요.” 소은혜도 조신하게 웃으며 경배에 찬 눈길로 그에게 말했다. 다만 내심 분노가 차올라 펜을 쥔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소은비, 내가 조만간 너 전당 마을로 보내버린다. 네가 자꾸 앞에서 알짱거리니까 나만 무시당하잖아.’ “에이, 뭘 또 그렇게까지. 나도 실은 엄마 때문에 억지로 공부해서 붙은 거야. 너도 너무 대단한데. 실업 공고에 다 붙고 말이야.” 칭찬을 받은 정지호는 쑥스러워하며 소은혜를 보다가 무심코 소은비에게 시선이 닿았다. 그는 참 이해가 안 됐다. 분명 소은비가 더 예쁜데 형은 대체 왜 소은혜랑 맞선을 보게 된 걸까? “이 늦은 시각에 무슨 일이야?” 민준혁은 그런 그를 고스란히 지켜보며 날카로운 눈길로 물었다. “엄마가 수박 전해주라고 해서.” 정지호는 민준혁과 같은 부대 단지에서 지낸다. 그의 아빠는 무려 중장급 참모장이다. “수박 내려놓고 이만 가봐.” 민준혁은 그의 손에서 수박을 건네받고 바닥에 내려놓은 후 집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엥?” ‘이제 막 왔는데 물 한 모금도 안 주고 그냥 가라고?’ “형, 나 아직 외할머니랑 외삼촌한테 인사도 못 드렸어. 왜 이래 정말?” “지호야, 방학 동안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사회 봉사활동이나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꾸 여기 찾아오지 말고.” 민준혁이 엄하게 경고했다. 소은비는 3개월 안에 무조건 남자친구를 찾겠다고 했는데 민준혁이 나이도 많고 아이까지 있어서 젊고 잘생긴 남자 위주로 물색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정지호가 바로 그녀의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남자였다. “왜? 삼촌이 방금 나더러 은비한테 과외도 해주라고 했어!” 정지호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고모가 고등부 교무부장이야. 은비 모르는 거 있으면 고모한테 여쭤보면 돼. 만에 하나 문제집 들고 너 찾아와도 절대 거들떠보지 마. 대학생이 되었어도 절대 방심하면 안 돼. 항상 남녀 사이에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은비는 고등학생이라 철이 없다고 쳐. 너까지 철없이 굴면 되겠어?” 민준혁은 썩 명확하게 말하진 않았다. 이에 정지호는 나름 일리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외삼촌과 외숙모가 직장에 나가면 외할머니와 민서아만 집에 남게 되었지만 이젠 낯선 여동생 두 명이 더 늘어났다. 그는 툭하면 외삼촌네 댁으로 찾아오는 버릇을 고치고 이제 그만 분수를 지켜야 할 듯싶었다. ‘근데 엄마가 전에 얼핏 은비라고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은데...’ 외삼촌도 항상 둘째 며느릿감은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겨서 나중에 크면 엄청난 미인이 될 거라고 하셨는데 소은혜는 아무리 봐도 조건에 부합되지 않았다. “근데 형, 외삼촌이 형한테 소개해주신 맞선 상대가 소은비 아니었어? 왜 소은혜로 바뀐 거야?” 정지호가 머리를 돌리고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민준혁은 걸음을 멈추고 얇은 입술을 움직이며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둘 다 나한텐 동생이야. 잠시 우리 집에 머물면서 학교 다닐 뿐이라고.” 정지호는 뭔가 알아챈 듯 장난 조로 물었다. “혹시 형이 너무 정색해서 은비가 싫다고 거절한 건 아니고?” “은비처럼 예쁘고 말투도 나긋나긋한 여자애들은 분명 대시하는 남자들이 많을 거야. 우리 학교 퀸카처럼 학교에서 인기 폭발일걸. 형은 항상 그 굳은 표정이 문제야...” 순간 민준혁의 안색이 짙어지고 미간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눈길로 정지호를 째려봤다. “지호야! 방금 내가 한 말 명심해. 내가 집에 없을 땐 절대 이리로 오지 마. 은비, 은혜랑도 너무 가까이 지내진 말고. 특히 은비는 더욱 경계해야 해.” “만에 하나 네가 은비랑 가깝게 지내는 걸 들키기만 하면 철봉 복근 운동 백 개 할 줄 알아.” 엄중한 경고에서 압도적인 포스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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