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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심은우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철통 안을 바라보면서 윤지현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쓰레기면 그냥 버리면 되잖아.” 윤지현이 대답했다. “불태우면 더 깨끗하게 없애버릴 수 있잖아.” 심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마당에 서 있었고 해는 지평선 아래로 완전히 사라졌다. 금요일 오전 정비소에서 정비를 마쳤다고 그녀에게 연락했다. 윤지현은 차를 픽업하러 갔다. 진성주에게 연락하려던 그녀는 그제야 정장을 떠올렸다. ‘깨끗이 세탁해서 돌려준다고 했었는데...’ 잠깐 고민하던 윤지현은 진성주에게 전화를 걸어 정비가 끝났다고 말한 뒤 수리 리스트와 수리 비용을 찍어서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마디 보탰다. [죄송하지만 도련님의 키와 체중, 쓰리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렇게 자세히 물은 이유는 비슷한 스타일의 정장 세트를 구매해서 보내주기 위해서였다. 정장은 일반적으로 세트였기에 비슷한 겉옷만 사서 보내면 그의 바지와 어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상대방이 그녀를 위해 옷을 빌려줬으니 이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었다. 진성주는 당황스러웠다. 윤지현은 한동안 답장을 받지 못했다. 혹시 쓰리 사이즈를 알지 못해서 그에게 물어봐야 하는 걸까? 윤지현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차를 타고 다음 코너를 돌았을 때, 윤지현은 재무팀 과장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그녀에게 확인해야 하는 데이터가 있다고 했다. 이마의 상처가 거의 다 나은 상태라 윤지현은 방향을 돌려 회사로 향했다. 꽤 오랜 휴가를 보냈기에 윤지현이 기획팀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녀에게 안부를 물었다. 일을 그만둔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아직 얘기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미안했다. 그녀가 떠나면 다들 새로 온 상사에게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윤지현은 재무팀 과장을 만나러 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와서 쌓인 업무를 봤다. 그렇게 오후까지 업무를 본 그녀는 뒤늦게 사직서 작성을 마쳤고 퇴근 전 그것을 심은우에게 주려고 했다. 그러나 퇴근하기 전 탕비실에 들렀다가 역겨운 얘기를 들었다. “비서팀에서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오늘부터 안승 그룹의 넷째 딸 구서희 씨가 우리 회사에서 출근한대요. 대표님이 구서희 씨를 자기 사무실에서 일하게 했나 봐요.” “심씨 가문과 구씨 가문에서 정략결혼을 하려는 걸까요?” “혹시 잊은 거예요? 우리 윤 과장님이 대표님 여자 친구잖아요. 두 사람이 정략결혼을 하면 윤 과장님은 어떡해요?” “...”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다가 한숨을 쉬었고 커피를 마시면서 구서희가 참으로 뻔뻔하다고, 윤 과장님이 안 됐다고, 대표님이 너무 매정하다고 작은 목소리로 투덜댔다. 윤지현은 밖에 서서 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빈 컵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로 한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사직서를 출력한 뒤 위층으로 향했다. 빨리 사직할수록 좋았다. 윤지현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대표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허지호가 달려와서 다급한 얼굴로 그녀를 막았다. “윤 과장님, 대표님께서는 회의 중입니다. 지금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윤지현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짧게 대답한 뒤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허지호가 안도한 순간, 그녀는 갑자기 몸을 돌려서 우아한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사무실로 걸어갔다. 윤지현은 문고리를 돌리며 문을 힘껏 밀었다. 윤지현은 가끔 자신이 짜증 났다. 이미 버리려고 마음먹은 남자인데 왜 그에게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그리고 왜 굳이 역겨운 광경을 보려고 애를 쓰는 걸까? 하지만 인간은 늘 감정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가끔은 정말로 참을 수가 없었다. “꺅!” 사무실 안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타월을 몸에 두르고 있던 구서희는 심은우의 등 위에 엎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자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심은우의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허지호는 감히 안을 보지는 못하고 죽고 싶다는 표정으로 눈을 가렸다. “윤... 윤 과장님. 사실은 구서희 씨께서 조금 전에 서류를 옮기다가 땀을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샤워를 하셨는데 윤 과장님께서 오해하실까 봐...” 윤지현은 아름다운 눈으로 허지호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허 비서님, 명문대 졸업생인 허 비서님이 언제부터 기둥서방이 되셨죠?” 말을 마친 뒤 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 지금 날 욕하는 거야? 과장 따위가 감히 대표 사무실에 제멋대로 들어와? 내일부터 회사에 출근하지 마. 당신은 해고야!” 구서희는 허리를 꼿꼿이 펴면서 거만한 자태로 반말을 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윤지현은 사무실 책상 앞으로 걸어가서 사직서를 내려놓은 뒤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로 말했다. “나 일 그만두겠다고 한 거 잊지 않았지? 여행 가려면 준비해야 할 게 많으니까 내일부터는 회사에 안 나올 거야. 물론 인수인계는 시간 날 때 할 거야.” 심은우는 감히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지 못했다. “네 마음대로 해.” 윤지현이 대답했다. “그래.” 그녀는 고개를 들어 구서희를 바라보다가 다시 심은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회의 계속해.” 경멸 어린 시선을 거둔 뒤 윤지현은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않아 이내 뒤에서 구서희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우리가 계속할지 말지는 우리가 정해. 당신이 뭐가 그리 잘났어? 은우 오빠는 예전부터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어. 은우 오빠가 사랑하는 건 나야. 우리는 몇 번이나 함께 밤을...” 심은우가 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만 얘기해!” 윤지현은 심호흡한 뒤 몸을 돌렸다. “얘기하게 놔둬. 구씨 가문 따님 낯짝이 얼마나 두꺼운지 보게.” 윤지현은 시선을 들어 구서희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사랑하든 말든 네가 내연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내가 이 문을 열고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건 너희들 뒤에 평생 외도한 남편과 내연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거라는 걸 의미해. 알겠어?” “지금 나한테 내연녀라고 한 거야?” 구서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윤지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윤지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서희의 뺨을 때렸고 구서희가 반격하려고 하자 그녀가 두르고 있던 타월을 빼앗고 그녀의 머리를 바닥에 눌렀다. 그런데 손을 쓰기도 전에 억센 힘이 그녀를 밀쳤다. 중심을 잃은 윤지현은 뒷걸음질 치다가 책상 모서리에 허리를 부딪쳤다. 순간 날카로운 통증 때문에 식은땀이 흘렀고 너무 아파서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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