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그냥 아주머니랑 정 좀 쌓으려고요.” 구서희의 목소리는 약한 듯하면서도 싸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어차피 저는 결국 심씨 집안으로 들어가게 될 거고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게 될 텐데요. 그렇죠, ‘엄마’?” 마지막 단어를 달콤하게 늘여 부르는 소리에 강혜경의 몸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녀는 마치 악령에게 붙잡힌 기분이었다. 이 아이는 그녀의 아들뿐만 아니라, 심씨 집안을 완전히 휘저을 요물이었다. 처음부터 들이지 말았어야 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5일 후. 윤지현의 다리는 거의 다 나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며칠 동안 너무 조용했다. 심은우는 더 이상 그녀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물론, 이번 사건이 터진 후 그도 정신이 없을 것이다. 온라인에서 난도질당하는 구서희와 함께 가족 전체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이상, 구씨 집안에서도 그를 가만두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윤지현은 언제든지 문제가 터질 거라고 예상하였다. 그날 고희연과 통화를 마친 후, 구서희의 가족들이 혹시라도 이곳에 들이닥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더 신경 쓰였던 건 부모님이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집을 찾아가 부모님께 괜한 화풀이를 한다면... 그녀는 점점 불안해졌고 결국 밤이 되자 참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엄마랑 외할머니댁에 며칠 다녀오세요.” 표면적인 이유는 할머니를 뵙기 위해서였지만 사실은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잠시 피신시키려는 속셈이었다. 통화 중, 부녀는 길게 말을 나누지 않았다. 이미 고희연이 모든 상황을 설명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궁금한 것도, 걱정되는 것도 진심 어린 위로조차도 서로 조심스러워하며 침묵 속에 묻어버렸다. 아버지는 단 한 마디만 남겼다. “몸 잘 챙겨라.” 그렇게 모든 대비를 마쳤지만 어쩐 일인지, 구 씨 집안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파트에 찾아오지도 않았고 부모님을 괴롭히러 간 것도 아니었으며 단 한 통의 협박 전화조차 걸려 오지 않았고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