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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진성주가 옆에서 말했다. 조도현은 시선을 내려뜨려 스크린 속 여자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그녀는 깔끔하고 자신감 넘치며 우아해 보였고 실력이 좋고 주관도 뚜렷해 보였다. 조도현은 저도 모르게 자신이 보았던 윤지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초라한 모습, 슬퍼하는 모습,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던 모습, 그리고 오늘은... 그에게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던 모습, 심지어 한 차례 모욕당한 뒤 참지 못하고 황급히 도망치던 모습까지. 조도현은 조금 짜증이 났다. 오늘 그가 했던 말은 조금 지나쳤다. ... 쭉 잠만 자다가 저녁 아홉 시에 깨어나 라면을 끓여 먹던 윤지현은 휴대전화가 울리는 걸 들었다. 진성주가 문자를 보냈다. 지난번에 조도현의 키, 몸무게, 쓰리 사이즈를 물어본 뒤로 진성주는 그녀에게 답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녀에게 숫자들을 쭉 보냈고 말도 전했다. [도련님께서 윤지현 씨가 정장을 구매하실 때 어려워하실까 봐 제게 사이즈를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윤지현은 이게 뭐 하는 짓이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 그녀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무슨 뜻이야? 어쩌라는 거야?’ 설마 생각이 달라져서 그녀에게 기회를 주려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윤지현은 곧바로 희망을 버렸다. ‘아니, 아니지. 사람은 자기애가 너무 강하면 안 돼...’ 거듭 고민하던 윤지현은 어쩌면 조도현이 그녀가 정장을 핑계로 다시 찾아오는 걸 막으려고 일부러 그녀에게 수작 부릴 생각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로 문자를 보낸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가 조도현의 의도를 곡해해서 정장을 들고 그를 찾아가 그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면 어쩌면 또 한 번 수모를 당할지도 몰랐다. 윤지현은 그 일자리가 꽤 탐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엄을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윤지현은 신중하게 답장을 적어서 보냈다. [네. 사이즈 기억해 두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정장을 구매해서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문자를 확인한 진성주는 조도현에게 말했다. “윤지현 씨께서 사이즈를 기억해 두었으니 최대한 빨리 정장을 구매해서 택배로 보내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택배? 금 테두리 안경을 쓰고 책을 읽던 조도현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면서 섬섬옥수로 페이지를 넘겼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제가...” 진성주는 조도현이 윤지현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성주도 윤지현이 딱하게 느껴졌기에 한마디 보탰다. “귀띔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니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 윤지현이 원하지 않는다는 걸 그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진성주는 조도현의 말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졌지만 굳이 말을 더 꺼내지는 않았다. ... 윤지현은 다음날 바로 정장을 사러 갔다. 그녀가 외출하자마자 뒤에 차가 따라붙었다. 윤지현은 운성에 있는 백화점 여러 군데를 돌아보면서 조도현의 회색 정장과 비슷한 옷감에 비슷한 스타일, 비슷한 품질의 정장을 찾아보았다. 두 시간 동안 다리가 저릴 정도로 돌아보았지만 결국 고르지 못했다. 회색 정장이 보기 드문 것이 아니라 조도현의 맞춤 정장이 럭셔리 브랜드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고품질이었기 때문이다. 윤지현은 벤치에 앉아 정장을 받았을 때 신사적이지만 동시에 경멸 어린 눈빛을 해 보이는 조도현의 모습을 상상했다. “... 에라, 모르겠다.” 그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잠깐 쉰 윤지현은 조금 전 들어가 보았던 매장으로 과감히 들어가서 조도현의 회색 정장과 비슷한 색깔에 비슷한 질감의 정장을 골랐다. 직원은 윤지현이 건넨 사이즈를 보더니 부러운 얼굴로 말했다. “어머, 배우자께서 몸매가 정말 좋으신가 봐요. 모델이신가요?” ‘모델?’ 조도현이 들었다면 모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윤지현은 종이백을 들고 매장에서 나온 뒤 진성주에게 어디로 택배를 보내면 되는지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로 문자를 보내고 있을 때 멀지 않은 곳, 그녀가 외출했을 때부터 그녀의 뒤를 밟던 사람이 몰래 사진을 찍어서 심은우에게 보냈다. 이때 심은우는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상태였다. 어제 골프장에서 봤던 여자의 뒷모습이 줄곧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윤지현의 뒷모습과 너무 닮았었다. 게다가 그녀의 앞에는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연기에 어울려 주면서 잠깐 시선을 딴 데로 돌릴 수 있어도 윤지현은 그러면 안 됐다. 윤지현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 사람은 산 채로 가죽을 벗기고 몸을 토막 내고 싶었다. 심은우에게 윤지현은 그의 사유 재산이었다. 윤지현은 평생 그만 따라야 했고, 그만 사랑해야 했으며, 평생 그만 바라봐야 했다. 심지어 그는 관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윤지현과 함께 묻힐 생각이었다. 그는 사람을 붙여 윤지현을 감시했다. 의자에 앉은 그는 윤지현을 감시하라고 붙인 사람에게서 사진을 받았다. 윤지현은 외출했고 세 시간 동안 쇼핑하여 정장을 한 벌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심은우는 기분이 좋았다. 그의 옷을 사러 갔다니, 아마도 화가 풀린 듯했다. ‘이래야지. 내 아내로서 사는 게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일이잖아.’ ... 윤지현은 사실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정장을 택배로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진성주가 답장을 보내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정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종이백을 대충 거실 소파에 던져 놓고 위층으로 올라가서 샤워했고 오후부터는 자신의 남은 자잘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8일 남았다. 몇 년간 살았던 집을 둘러보니 꽤 슬펐다. 이 집은 윤지현이 원하던 스타일로 꾸며졌다. 집 안의 물건들 모두 그녀가 선택한 것이고 심지어 귀여운 아기방도 있었다. 평생 함께 살 생각이었는데 결국엔 이렇게 끝나게 되었다. 서재의 가장 아래쪽,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서랍 안에서 윤지현은 오래된 USB를 발견했다. 그녀는 궁금한 마음에 그것을 노트북에 꽂아 넣었고 그 안에 자신과 심은우의 옛 사진들이 가득한 걸 발견했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사진들이었다. 그때의 심은우는 깔끔하고 잘생겼었다. 윤지현은 어렸었던 그때의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마치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문득 추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의 심은우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 저녁때쯤, 심은우가 보기 드물게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윤지현은 그의 몫을 준비하지 않았고 그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언제 샀는지도 모를, 어쩌면 유통기한이 1년도 더 지났을지 모르는 컵라면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심은우는 어이가 없었다. “...” “차라리 밖에 나가서 먹지 그래?” 심은우는 밖의 것들을 가장 좋아했다. 밖에 있는 여자, 밖에 있는 침대, 밖에 있는 똥까지 집의 것보다 나을 것이다. “...!” 지금 그를 내쫓으려는 것일까? 심은우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가 지금 이 순간 확 불쾌해졌다. “다른 집안 아내들은 따뜻한 밥을 짓고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린다던데 지금 날 보고 라면을 먹으라고?” 그에게 독약이 아닌 라면을 건네는 건 윤지현으로서 자비를 베푼 셈이었다. 윤지현은 쓸데없이 그와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토마토스파게티는 1인분이야. 내가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거라도 먹어.” 심은우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 나 토마토 절대 안 먹는 거 몰라?” 윤지현은 이마를 탁 쳤다. “아, 깜빡했어.” 심은우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그는 화가 난 얼굴로 윤지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굳은 얼굴로 주방에서 나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윤지현은 토마토스파게티를 들고 다이닝룸으로 향한 뒤 예능 프로그램을 켜놓고 그걸 보면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 심은우는 서재로 들어가서 혼자 씩씩댔다. 오전에 그를 위해 세 시간 동안 정장을 고른 윤지현은 무엇 때문에 그가 돌아오자마자 태도가 싹 바뀐 걸까? 그녀에게 집에서 저녁을 먹을 거라고 미리 연락하지 않았어도 지금 당장 장을 보러 가서 그를 위해 요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윤지현은 그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까지 잊었다. 심은우는 속에서 열불이 났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심은우는 윤지현이 자신을 위해 어떤 정장을 골랐는지 보고 싶었다. 한 바퀴 둘러봤지만 정장은 없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윤지현에게 물으려던 심은우는 갑자기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는 문 앞에 서서 드레스룸을 둘러보았다. 윤지현의 물건이 언제 이렇게 적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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