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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윤 과장님께 비서가 되라는 말이에요? 미친 거 아니에요?” 누군가 바로 반박했다. “우리 윤 과장님은 능력도 출중하고 젊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경력도 대단해요. 구일 그룹 대표가 우리 윤 과장님을 탐내지 않을 리가 없죠. 그리고 솔직히 윤 과장님 정도면 여기저기에서 러브콜이 들어올걸요.” 윤지현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헤드헌터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이미 열흘 전 누군가 그녀에게 전화하여 앞으로 계획이 있는지를 물었다. 당시엔 윤지현이 세민 그룹을 떠날 거라는 사실이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사람들은 계속해 그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비서가 뭐 어때서요? 상대는 무려 구일 그룹의 대표라고요. 업계 최고의 인맥을 쌓을 기회인데 일을 잘하면 앞날이 창창할 거예요.” “해외에 있는 한 회사의 비서는 능력이 뛰어나서 몇 년 뒤 그 회사의 부대표가 되었고 심지어 사랑까지 쟁취해서 대표님 아내가 되었어요.” “하하, 듣고 보니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그런데 구일 그룹 대표님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요? 본 사람 있어요? 잘생겼나요?” “본 적 없죠. 조씨 가문의 자제 네 명 중에 큰딸만 모습을 공개한 적이 있어요. 다른 세 분은 언론에 공개된 적이 없죠.” ... 대화를 이어 나갈수록 주제가 이상해졌다. 윤지현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사랑에 대한 기대가 가득한 그들의 모습을 본 윤지현은 자신이 속세를 꿰뚫어 본 스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사랑이라는 것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라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윤지현은 창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인맥은 모두 심은우와 관련이 있었기에 그와 선을 긋게 되면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우선 다른 인맥을 쌓아야 했다. ... 저녁때쯤 윤지현은 재벌가 인맥을 많이 두고 있는 사람에게서 베일에 싸여 있는 구일 그룹의 대표에 대해 알아보았다. 전화 너머에서 나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남자에게 관심이 많네. 자기 남자 친구가 질투할까 봐 두렵지 않아?” “질투하라고 해. 상관없어.” “어머, 자기야. 설마... 정말 둘이 헤어진 거야?” 여윤아는 궁금한 듯 물었다. “아직은 아니야.” 윤지현은 그녀의 말에 긍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윤아는 곧바로 눈치채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들은 소문이 진짜였단 말이네. 두 사람 8년 넘게 사귀지 않았어? 심은우 정말 최악이다.” 여윤아는 아주 진솔한 사람이었다. 윤지현은 그녀의 앞에서 적당히 불쌍한 척했다. “그러니까 나도 내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해야지.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 사람 지금 비서를 구하고 있다면서? 거기 한번 가보고 싶은데.” “그러면 일단 확실하게 얘기해줘. 남자를 노리는 거야? 아니면 돈을 노리는 거야?” “난 앞으로 돈만 믿으려고.” “하하하하...” 여윤아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전화 너머에서 들려왔다. “알겠어. 나한테 맡겨. 내가 꼭 만날 수 있게 해줄게.” “고마워.”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어.” 전화를 끊은 뒤 윤지현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검색해 보았으나 뜨는 정보가 아주 적었다. “조도현...” 윤지현은 그의 이름을 되뇌면서 미리 그의 성격이나 취미 같은 것을 알아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서재 문이 열렸다. 심은우가 안으로 들어왔고 윤지현은 노트북을 닫았다. 심은우와 윤지현은 각자 서재가 있었다. 예전에 뜨겁게 사랑했을 때는 늘 붙어 있었는데 그 뒤로는 진짜 상사와 부하처럼 변해서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윤지현이 고개를 들었다. “볼일 없으면 오지도 못해?” “... 그건 아니고.” ‘내가 떠난 뒤면 벌거벗고 들어와도 돼.’ 심은우는 조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노트북을 힐끔 바라보았다. 심은우가 들어오자 윤지현은 노트북을 닫았다. 그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심은우는 윤지현의 서재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미리 얘기 해둘 일이 있어서 말이야.” 윤지현이 말했다. “얘기해.” 심은우는 시선을 내려뜨리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서희가 너희 기획팀에 가고 싶어 해.” 윤지현은 심은우가 정중하게 굴 때면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예상대로 그녀의 신경을 긁었다. 윤지현의 표정이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회사에 팀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기획팀으로 와서 폐를 끼치겠다고?” 심은우는 불쾌해했다. “폐를 끼친다니. 서희는 일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해. 이건 칭찬해야 할 일이야.” “...” 윤지현은 화가 나서 피를 토하고 싶었다. “구서희가 일을 제대로 배우든 말든, 회사의 어느 팀에 구서희를 맡기든 상관없어. 하지만 기획팀은 안 돼. 기획팀은 내 팀이야. 거기에는 내 사람들이 있다고!” “윤지현, 말은 똑바로 해. 넌 이미 사직했어. 넌 더 이상 세민 그룹 사람이 아니야. 기획팀은 네 팀이 아니라고!” “...” 윤지현은 말문이 턱 막혀서 괴로웠다. 심은우의 말대로 세민 그룹은 그의 것이었다. 윤지현에게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권리도, 그의 결정을 반대할 권리도 없었다. 심은우가 윤지현이 힘겹게 만들어낸 결실로 내연녀를 즐겁게 해주려고 해도 윤지현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심은우는 윤지현의 모습을 바라보며 애써 화를 억눌렀다. “서희를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 서희는 민폐를 끼치러 가는 게 아니야. 내가 잘 지켜보고 있을게.” “마음대로 해.” 윤지현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그녀는 힘들었고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심은우의 눈빛에서 짜증이 들끓었다. “내가 너한테 미리 얘기하는 건 네가 지금처럼 화내지 않기를 바라서였어. 넌 서희를 굉장히 미워하잖아. 네가 걔를 싫어한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너도 내 입장을 생각해줘야지. 심씨 가문과 구씨 가문은 지금 협력 중이야. 내가 네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구씨 가문과 등을 돌려야겠어?” 윤지현은 심은우의 억지 논리에 깜짝 놀랐다. 그녀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윤지현은 남편을 빼앗겼고 직장도 빼앗겼다. 그런데 이젠 심은우의 내연녀를 기꺼이 받아주고 그녀에게 예의까지 갖춰야 하는 걸까? “하...” 사람은 분노와 슬픔이 극에 달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입속에서 피비린내가 퍼지는 착각이 들었다. ... 사흘 뒤, 윤지현은 인수인계하러 회사로 향했다. 구서희는 샤넬 셋업을 입고 승자처럼 윤지현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개인 물품을 전부 버렸다. 심지어 벽면을 가득 채운 윤지현이 받았던 상도 멋대로 쓰레기통 안에 처넣었다. 기획팀 사람들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들 모두 앞으로 누가 윤지현을 대신하여 기획팀을 끌어 나갈지 추측했었다. 윤지현보다 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보내다니, 어떻게 해야 할까? 비서실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구서희는 프린터도 쓸 줄 모르고 매일 간식을 먹으면서 게임만 한다고 한다. 그러다 자기 노트북으로 게임을 다운받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막무가내로 비서실의 노트북을 가져가서 쓰다가 한 비서의 중요한 파일을 삭제해 버렸다고 한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점은 심은우가 다름 아닌 피해자를 잘랐다는 것이다. 구서희가 앞으로 기획팀에서 어떻게 분탕 칠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무실 안, 윤지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중요한 서류 몇 개를 들자마자 구서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분이 어때?” 구서희는 의자에 앉아 거만하게 윤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자도 빼앗겼고 직장에서도 잘렸잖아. 그동안 이것들을 얻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을 텐데 나는 그냥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다 얻을 수 있네. 왜 그런지 알아? 우리는 신분이 다르거든. 나는 고귀하고 당신은 비천하지. 나한테는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수두룩해. 그런데 당신은 없잖아. 나는 우리 이 바닥에서 당신처럼 출신은 비천하고 얼굴만 반반한 애들 질리게 봤어. 다들 남자들의 장난감에 불과하지. 그런데 감히 심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노려? 사람이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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