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앞으로 안 그럴게

배진욱이 데리러 올 사람이 아니었기에 퇴근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배씨 가문 본가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본가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그 안에 앉아 있는 배진욱이 보였다. 한 무리의 사람이 모여서 웃고 떠드는 와중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서 한마디도 끼어들지 못했다. 나를 발견한 노수영은 웃으며 문을 열어줬다. “우리 희주는... 참 알뜰살뜰해. 이 가방 적어도 5, 6년은 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팔아도 얼마 안 나올 걸? 어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느 회사 인턴인 줄 알겠다. 옷차림이 이게 뭐니.” 배진욱의 큰 엄마는 항상 듣기 싫은 말을 한다. 전에 절친의 딸을 배진욱에게 소개하려고 했는데 결국 나랑 결혼하게 되었고 그 후로 볼 때마다 몇 마디 비꼬면서 싫은 티를 팍팍 냈다. 나는 그저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씨 가문 가족들도 내 처지를 대부분을 알고 있기에 그들의 놀림 대상이 되는 건 이제 익숙했다. 말을 이어가던 노수영은 뭐가 생각났는지 얼른 입을 막았다. “아참, 내 기억력 좀 봐. 희주는 입는 것부터 쓰는 것까지 다 진욱이한테 허락받아야 되지? 옷장 문도 못 열게 한다며?” 가족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모두가 나를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시각 배진욱의 표정도 약간 굳어있었는데 불만이 많은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하긴 나 때문에 망신을 당했으니 화날 만도 하다. 그런데 이게 사실이니 별다른 방법이 없다. “맞아요. 제가 집에 있는 것들을 함부로 쓸 수가 없거든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노수영을 바라보다가 다른 가족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이때 배성후가 헛기침하고선 나에게 손짓했다. “희주야, 얼른 이쪽에 와서 앉아. 회사로 복귀했다면서? 뭘 그렇게까지 하니? 안 힘들어?” 역시나 나이가 있으니 구시대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고로 여자란 집에서 남편을 모시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게 배성후의 주장이었고 여자가 회사에 출근하는 걸 언짢게 여겼다. 키워야 할 아이와 모셔야 할 남편이 없는 게 이렇게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