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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배씨 가문

예전에는 배진욱이 전화하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배진욱’이라는 세글자가 뜨는 순간 짜증부터 밀려왔다. 너무 싫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여러 프로젝트를 생각하면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진욱의 사무실에 도착하니 유시은이 울먹이며 자리를 박차는 모습이 보였다. 유시은은 나가는 와중에도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나를 째려봤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눈살을 찌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인데?” 배진욱은 단발로 자른 내 모습이 적응되지 않은 듯 흠칫 놀랐다. “머리는 왜 자른 거야?” 그 말에 대답하고 싶지 않아 다시 한번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저녁에 가족이랑 식사 자리가 있는데 같이 가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하는 걸 보니 나와 함께 가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배진욱은 배씨 가문 출신이지만 그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다. 그는 고아였다. 어릴 적 할머니가 발견하여 키워줬고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호적 신청을 도와주고서야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만약 성적이 우수하지 않았다면 평생 시골 마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배진욱은 시골 출신답지 않은 남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에 사로잡혔다. 그러다가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해 궁지에 몰린 순간 정체가 밝혀졌다. 사실 배진욱과 헤어지고 스턴국으로 간 지 3개월 만에 그는 배씨 가문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운명의 장난같이 그의 할머니가 마침 심각한 심장병을 앓게 되었고 배진욱은 병원과 직장을 전전하며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생활을 보냈다. 그 당시 배진욱은 돈이 거의 없는 작은 프로그래머에 불과했다. 같은 타이밍에 나도 암 확정 진단을 받게 되었고 우리 가족은 재정 위기에 빠졌다. 암 확산 속도가 매우 빨라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점점 안 좋아졌고 엄마는 이를 악물고 나를 해외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출국하기 전 배진욱과의 이별을 강요받아 눈물을 펑펑 쏟으며 애원했다. “엄마, 진욱이는 날 사랑해요. 암인 걸 알아도 절대 포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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