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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안녕하세요, 신분증 보여주세요.” 정지헌은 정준우의 사진과 신분증을 창구에 올려놓았고, 꿈쩍도 안 하는 김소정을 보더니 무심하게 말했다. “싫다는 사람을 강요할 생각은 없어. 어차피 김광호의 딸이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김소정이 흠칫 놀랐다. 지금 여동생으로 협박하는 건가? 애꿎은 옷깃만 움켜잡은 탓에 이미 너덜너덜할 지경이었고, 결국 마지못해 신분증을 꺼냈다. 삼촌이 식물인간이라서 결혼하더라도 스킨십은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 현재로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합법적인 의뢰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남자분 신분증도 필요합니다.” 정지헌은 별 의심 없이 신분증을 꺼내서 전해주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구청에서 걸어 나왔다. 접수증을 들고 있는 다른 부부와 달리 둘은 빈손이었다. 직원은 프린터가 고장이 나서 당장 처리가 불가하니 주소를 남겨주면 나중에 우편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정지헌은 양지민에게 마무리를 부탁했다. 정작 그는 김소정이 자칫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인 듯 밖에 나오자마자 멱살을 잡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경고했다. “앞으로 우리 삼촌 정성껏 보살펴. 행여나 꿍꿍이라도 꾸민다면 죽여버릴 테니까.” 김소정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결혼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분명 눈앞의 남자와 구청을 다녀갔지만 남편은 따로 있었다. 이때, 양지민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방금 입수한 소식인데 그 사람을 찾았다고 합니다.” 정지헌의 동공이 흔들리더니 재빨리 김소정을 뿌리치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 어젯밤 같이 있었던 여자에게 반한 건 아니지만 꽤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아름다운 나체를 떠올리는 순간 아랫배에 피가 쏠렸다. 그녀를 애타게 찾은 이유도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어젯밤 리조트의 CCTV가 전부 고장이 나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신지수 씨가 드나든 시간대가 제일 비슷하다고 하네요.” 정지헌은 냉소를 지었다. 어젯밤 장아진과 같이 있었다고 우기려고 둘째 숙모가 일부러 CCTV를 망가뜨렸을 것이다. “대표님, 신지수 씨는 루머가 별로 없고 평판도 좋은 편이지만 성격이 약간 쌀쌀맞다고 하네요.” “쌀쌀맞다라...” 정지헌은 손에 든 하트 목걸이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김소정이 바닥에서 일어나자마자 절친 강다은의 연락을 받았다. 카페. 강다은은 씩씩거리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늙다리 아저씨가 감히 널 탐내다니? 다음에 만나면 엉덩이라도 걷어차 줄게.” “됐어. 어쨌거나 네 아빠 지인인데 괜히 나 때문에 얼굴 붉히지 마.” “아빠도 참, 어떻게 그런 찌질한 아저씨를 소개해줄 수 있지? 별일 없어서 다행이야.” 강다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의혹이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어젯밤에 그 지경이 되었는데 무사히 극복했나 보네?” 김소정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찬물로 샤워했더니 괜찮아졌어.”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되뇌자 정지헌이 저절로 떠올라 저도 모르게 당황했다. 아르헨시에서 그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더니, 무뚝뚝한 얼굴로 싸늘한 냉기를 뿜어내는 모습은 저승사자를 연상케 했다. “소정아, 네가 사건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실을 알고 나서 이준 선배도 건축학을 죽어라 배우더니 어제 거기에 취직했다고 하더라. 다만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대. 널 진심으로 좋아하나 봐. 한창 잘나가던 찰나에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공사장에서 막노동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넌 이준 선배 어때? 만약 마음이 있다면 이참에 결혼해.” 김소정은 고개를 숙이고 잔에 든 커피를 휘적거리며 또박또박 말했다. “별로야. 그리고 난 이미 결혼했어.” “뭐?” 강다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언제? 누구랑? 잘생겼어? 돈 많아? 왜 나한테 말도 안 했어?” 김소정이 피식 웃었다. “지금은 모든 게 미지수라서 나중에 정리되면 알려줄게.” 비록 구청에 가서 신고는 했지만 결혼 자체가 막연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정씨 가문에서 무슨 요구를 할지는 아직 모른다. 강다은이 입을 열려던 찰나 주여정한테서 전화가 왔다. “딸, 엄마가 실수로 다리를 다쳤는데 신씨 가문에 얼른 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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