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고급스러운 승용차가 신씨 저택으로 들어섰다.
신지수의 어머니 노수영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누군데 감히 우리 집에 함부로 드나들지?”
신지수는 차에서 내린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엄마, 정지헌 씨잖아요! 혹시 아빠가 부른 건 아닐까요?”
“그럴 리가?”
노수영이 대답했다.
“우리 집이 잘사는 건 맞지만 정씨 가문은 아르헨시에서 무려 신화 같은 존재야. 네 아빠가 무슨 재주로 그런 분을 오라 가라 하겠어?”
신지수는 묵묵부답했고 정지헌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노수영이 흘긋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너 설마 정지헌 좋아해?”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를 누가 싫어하겠어요?”
“워낙 명성이 자자하고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라서 애인이 한 두 명이 아닐 것 같은데? 더욱이 우리 집안이 정씨 가문의 눈에 들 리 있겠어?”
옆에 있던 주여정이 끼어들었다.
“그건 모르는 일이죠. 정지헌 씨도 아가씨처럼 예쁜 여자를 보면 첫눈에 반할 거예요.”
신지수가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노수영이 발끈하며 말했다.
“애 좀 그만 치켜세워요. 어쩐지 지수가 아줌마만 유난히 따른다 했어요.”
주여정이 너털웃음을 지었고, 신지수를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정지헌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지헌 씨? 혹시 우리 아버지를 만나러 오셨나요?”
신지수는 정지헌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면서도 목소리만큼은 애교가 묻어났다.
정지헌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누구? 난 지수 씨한테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저요?”
신지수는 어리둥절하면서 은근히 기뻤다.
“어젯밤에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했잖아요.”
“무... 무슨 일이요?”
노수영이 깜짝 놀랐다.
“책임은 또 웬 말이고?”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신지수가 서둘러 어머니를 뒤로 끌어당기더니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 절 알아본 거예요? 평생 비밀로 간직할 생각이었는데 어쨌거나 여자에게 치명적인 일이잖아요. 게다가 지헌 씨 입장도 잘 모르겠고...”
“지수 씨랑 결혼하고 싶어요. 평생 함께할래요?”
신지수는 두 눈이 반짝 빛나더니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당연하죠.”
정지헌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눈앞의 여자는 상상했던 이미지와 사뭇 달랐다.
이내 주머니에서 하트 목걸이를 꺼냈지만 보여주지는 않았다.
“어젯밤에 지수 씨가 두고 간 물건인데 뭐였는지 기억해요?”
신지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어젯밤에 같이 있은 적이 없는데 무슨 수로 알겠는가?
한편,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주여정은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온 빨간색 끈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본인이 직접 제작한 목걸이인지라 그녀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물건이었다. 당시 특이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서 시중에 판매하는 기성품과 차이가 있었다.
설마 어젯밤 김소정과 함께 있었단 말인가?
‘어쩐지 오늘 목걸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왜요? 본인 물건도 까먹었어요?”
정지헌은 신지수를 빤히 쳐다보았고, 위엄이 넘치는 눈빛에 저절로 압도당했다.
신지수가 안절부절못하는 와중에 주여정이 갑자기 옆에 있던 물걸레 통을 들고 걸어가다가 실수인 척 넘어졌다.
구정물을 뒤집어쓰게 된 정지헌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노수영이 서둘러 호통쳤다.
“이 사람이 노망났나? 다리를 다쳤다고 해서 거동이 불편한 정도는 아니잖아요? 얼른 정지헌 씨한테 사과하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닦아 드리겠습니다.”
정지헌은 역겨운 듯 주여정의 손을 뿌리치더니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신지수가 그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지헌 씨, 날도 추운데 홀딱 젖어서 나가면 어떡해요? 옷을 준비해드릴 테니까 갈아입고 가세요.”
“괜찮아요. 차에 여벌 옷이 있어요.”
말을 마치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신지수는 주여정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주여정은 실망한 나머지 입술을 삐쭉였지만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가씨, 그건 하트 모양 목걸이에요. 가장자리는 금이고 중앙에 옥이 박혀 있죠.”
신지수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줌마가 어떻게 알아요?”
“우리 딸 물건이거든요.”
“네?”
신지수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그렇다면 어젯밤에 지헌 씨랑 같이 있었던 사람이 아줌마 딸이라는 거예요? 운도 지지리 좋네요. 지헌 씨와 관계를 맺게 되다니.”
“그러니까. 딸 덕분에 곧 출세할 텐데 우리 집에서 가정부로 일할 필요가 뭐 있어요?”
주여정이 서둘러 대답했다.
“사모님,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죽을 때까지 입 닫고 있을게요. 아가씨한테 목걸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준 것도 지헌 씨랑 잘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죠. 우리 딸이 뭐라고 감히 지헌 씨 같은 분을 넘보겠어요?”
신씨 저택에 도착하는 순간 김소정은 눈에 익은 승용차를 발견했다.
‘희한하네. 가는 곳마다 마주치다니.’
반쯤 열린 차 문 사이로 검은색 지갑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집어 들고 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