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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정지헌이 여긴 웬일이지? 구청은 보통 혼인신고 하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은가? ‘역시나 짝이 있었군.’ 그녀는 어젯밤 일은 비밀로 하고 평생 가슴 속에 묻어둘 거로 다짐했다.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남자는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온몸으로 싸늘한 기운을 풍겼다. 게다가 살짝 찢어진 눈매는 왠지 모르게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본능적으로 겁을 먹은 김소정은 그가 다가오자 묵묵히 길을 터주었다. 그리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목을 움츠렸다. 하지만 존재감을 감추기 위해 애를 쓰던 찰나 굳이 숨어 있을 필요성을 못 느꼈다. 어차피 칠흑 같은 방 안에서 얼굴을 제대로 봤을 리 만무했다. 남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직진했고, 김소정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어젯밤에 같이 있었던 여자가 그녀일 줄은 꿈에도 모르는 듯싶었다. 김소정을 스쳐 지나간 정지헌은 한참을 걸어가고 나서야 양지민에게 물었다. “내가 무섭게 생겼나?” 양지민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럴 리가! 대표님처럼 멋지고 잘생긴 분이 무섭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저 여자는 왜 귀신이라도 마주친 듯 질겁하는 거지?” ...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자 김소정은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려고 했다. 이때, 싸늘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제 발로 들어갈 건가? 아니면 내가 에스코트해주기를 원하는 건가?” 김소정은 흠칫 놀라더니 재빨리 뒤를 돌았고 눈앞에 서 있는 정지헌을 발견했다. “어...” 정지헌은 눈살을 찌푸린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안으로 들여보내.” “네! 대표님.” “잠깐! 그게... 사람 잘못 보셨어요.” 김소정은 빠른 걸음으로 정지헌을 따라잡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 “착각하신 거 같은데 저랑 결혼할 사람은...” “아니, 너 맞아. 김소정!” 남자의 입에서 처음으로 듣게 된 자신의 이름은 어딘가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왠지 모르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눈빛뿐만 아니라 말투마저 얼음장 같았다. 분명 식물인간과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나? 갑자기 정지헌으로 바뀐 이유는 뭐지? 설마 어젯밤에 같이 있었던 여자가 그녀인 줄 알았단 말인가? 당시 책임지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뜻인가? 김소정은 온갖 추측과 두려움을 뒤로한 채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나랑 결혼할 생각이 있는 거예요? 지금 만나는 사람 없어요?” 양지민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오해를 단단히 한 것 같은데 괜히 본인이 더 민망했다. 정지헌이 냉소를 지었다. 커다란 몸집과 시니컬한 얼굴의 남자가 이죽거리며 웃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김소정은 저도 모르게 옷깃을 움켜쥐었다. “왜 웃죠?” “생각보다 순진해서. 과연 너 같은 원수를 아내로 맞이할 이유가 있을까? 평생 우리 삼촌 곁에서 수발들며 죄를 갚게 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삼촌?” ‘잠깐, 죄를 갚는다니? 식물인간 약혼자가 정지헌의 삼촌이었어?’ 정지헌과 관계까지 가졌는데 어찌 삼촌과 결혼할 수 있단 말인가? 절대 불가능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정지헌의 삼촌만큼은 예외였다. “죄송합니다만 삼촌과 결혼하는 건 어려워요.” 비록 두렵긴 했지만 말투는 사뭇 단호했다. 정지헌의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온몸으로 살기를 뿜어냈다. 이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유는?” 사실대로 말했다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없어요. 그냥 마음이 바뀌었어요.” 말을 마치고 나서 도망치려는 찰나 커다란 손이 옷깃을 덥석 붙잡더니 그대로 번쩍 들어 올렸다. “싫다면 끝이야? 남은 인생을 식물인간의 수발을 드는 데 허비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똑똑히 들어. 우리 삼촌이 깨어나기 전까지 너도 팔자 필 생각하지 마.” 그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치더니 양지민을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바쁜 사람이야. 당장 끌고 들어와.” 김소정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남자의 넓은 등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싸늘한 눈빛에서 보아낸 것은 분명 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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